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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1980년대적 리메이크 루이스 터커 찰리 스카벡 - 미드나잇 블루 Midnight Blue 1982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1980년대의 팝음악은 전세계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무래도 빌보드 차트가 미국에서 발표되는 것이기에 미국 아티스트들이 많았지만 다양한 국적의 가수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어권이라 그런지 영국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노래를 부른 루이스 터커는 성악가로 영국 출신입니다.  오페라 가수이지만 팝음악으로 이름을 먼저 알리게됩니다. 이노래는 원래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 비창 2악장으로 루이스 터커가 데모 제작한 미드나잇블루를 이전에 만났던 팀 스미트에게 건넸고 데모를 친구이자 음반제작자인 찰리 스카벡에게 보내 프로듀스하고 동시에 싱글곡 Midnight Blue에서는 같이 노래를 부르며 완성됩니다. 사람에게 있어 인연이란게 이런듯..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이를 알아주고 좋은길로 동행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앨범은 1982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서 1984년 무렵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원곡인 베토벤의 비창이 가지는 익숙함과 엄숙함 그리고 루이스 터커의 탁트인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찰리 스카벡의 분위기 있는 탁한 목소리도 조화가 매우 잘된 곡입니다.



루이스 터커 (Louise Tucker)












Midnight Blue     - 1982



"Midnight Blue"

"Only for You"

"Hush"

"Shadows"

"Waiting for Hugo"

"Voices in the Wind"

"Jerusalem"

"Graveyard Angel"

"Gettin' 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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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고 감미로운 에프알 데이빗 (F.R. David) - Words 1982년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우리나라의 인기 팝송은 미국의 빌보드와는 조금 다르게 형성되는 것들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80년대의 미국의 팝음악은 전세계적인 인기의 시대였지만 빌보드 선정 연도별 히트곡을 보면 모르는 것들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히트치지 못한 것들도 여기저기서 볼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를 파고 들어온것은 유로팝으로 주로 클럽이나 요즘은 추억의 롤라장으로 불리는 댄스음악이나 유럽과 아시아에서만 히트친 발라드 곡들을 들수있습니다. 모던토킹 조이 런던보이즈등 댄스음악이 대부분.. 


지금 소개하는 F.R. David의 Words도 이런 부류로 넣을수 있는 곡입니다. 80년대 당시에 우리나라에서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에프알 데이빗은 1947년 튀니지 출생으로 주무대는 프랑스였습니다. 70년대에는 반젤리스와 함께 미국 진출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1981년 발표한 Words 앨범은 이듬해 영국에서 2위 및 전유럽 챠트를 대부분 석권하고 미국 빌보트 차트에도 올라갔지만 Top40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에서도 대단한 히트를 쳤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인기있던 팝송입니다.


당시에 이노래외에도 같은 앨범내에서 Music, Pick Up The Phone등이 연달아 히트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사랑을 나타내는것을 말로 표현하는건 너무 어렵다는 고백





뮤직비디오




방송







Words



"Words" (Robert Fitoussi)

"Pick Up The Phone" (Fitoussi/Richelle Dassin)

"Take Me Back" (Fitoussi/Darras)

"Music" (Frédéric Leibovitz/Darras/Sam Choueka)

"Someone To Love" (Fitoussi/Daniel Darras/Richelle Dassin)

"Rocker Blues" (Fitoussi/Dassin)

"Givin' It Up" (Fitoussi/Pepin)

"He" (Fitoussi/Pepin/Dassin)

"Porcelain Eyes" (Darras/Fitoussi)

"Can't Get Enough" (Fitoussi/Pepin/Da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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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신스팝 듀오 야주(YAZOO) - Don't go 1982년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야주(Yazoo)는 80년대 잠깐 활동한 신스팝 듀오입니다. 야주라고 하면 누구야? 할수도 있겠지만 사십대면 노래를 듣는순간 아아 이노래 할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이팀의 이름을 지금까지 야즈로 알고있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야즈(Yaz)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유는 미국에 이미 야주라는 이름의 밴드가 있어 소송위험이 있었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80년대 이제는 고인이된 김광한이 진행하던 쇼비디오자키의 음악소개 코너에 쓰이던 곡입니다. 지금 들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수 있는 곡입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소리였던 신시사이저를 매우 감각적으로 연주하면서 만들어낸 곡입니다.


야주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전자음악에 심취한 빈스 클라크가 당시 소속되었던 디페치 모드를 나온뒤에 앨리슨 모예를 극적으로(둘은 같은 동네 살았고 어릴때 같은 음악학교를 다니기도 했는데 마주친적이 별로없어 서로 존재를 몰랐다고 합니다. 클라크는 이후에 모예의 노래하는 모습을 몇번 본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만나 듀오를 이루었습니다.


앨리슨 모예는 어릴때부터 리듬앤 블루스에 심취해있어 태생적으로는 전통주의자라고 밝혔는데.. 야주 결성은 앨리슨 모예가 블루스 밴드를 결성하고 싶다는 광고를 냈는데 이에 빈스 클라크가 연락한것..  


하지만 빈스 클라크는 야주의 앨범을 1회성으로 생각했기에 2번째 앨범을 생각하고있지 않았기에 모예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여곡절끝에 2번째 앨범이 나온건 클라크가 1년사이에 2번의 밴드 탈퇴가 이미지상 좋지않을거란 주변의 조언이 먹혔기 때문인데 녹음과정은 서로 매우 소원했기에 삐걱거렸고 아침에 빈스클라크가 음악작업을 저녁에 모예가 녹음을하기에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채로 4달간의 작업이 끝나고 발매한지 얼마못가 덜컥 해체하게됩니다. 


그룹이었으면 해체를 할수도있지만 멤버 교체를 하거나 하겠지만 듀오의 경우에는 솔로로 전향하기 쉬워 깨지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유명한 듀오의 몇몇 경우를 보면 왬은 워낙 조지마이클쪽에 무게가 월등하게 실려 예정이 되었다고 볼수 있었고 사이몬앤 가펑클의 경우도 서로의 재능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일하는 스타일등 성격상 깨진 경우이고 모던 토킹은 싱어인 토마스 앤더스의 아내 때문에 깨졌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대중음악 스타들은 어린나이에 정상에 서게되면 아무래도 사회경험 부족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게도 불리한 결정들을 할 확률이 높은것 같습니다. 성격이나 인성의 문제라던가, 지금의 인기 그대로 혼자 독식할수도 있겠다는 착각이라던가, 자기만의 세계를 주장하다 둘다 놓치거나.. 어떤 결정이던 인생의 굴곡이고 흐름이겠지만 이때는 어려움도 한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오거나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잘나갈때 부족한 몇가지때문에 아득바득하는것보다 모든것에 감사해야 하는것도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야주 활동시절 빈스 클라크와 앨리슨 모예





2008년 재결합 과정에서 빈스 클라크는 당시에 자기생각만하고 남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이 많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밴드가 해체된건 이런 와중에 클라크와 모예가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게될 시간이 적었기에 결론적으로 많은 오해와 의사소통 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해체이유는 빈스 클라크는 자신이 하려던것만 할생각이었고 모예와 친해질 시간도 없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었던 상태(둘다 당시에 이십대 초반)에다 클라크는 밴드를 지속할 생각도 별로 없었던 상태였기에 모예는 기분이 많이 상했는데 그와중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대화같은 것도 없었기에 그냥 해체된 상태..


영국 챠트를 휩쓸던 이들은 미국에서도 적게나마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후 이들의 앨범은 오랜기간 판매되면서 1989년에는 판매량이 백만장을 넘어서게 됩니다.


당시의 뮤직비디오들은 기괴한 형태의 컬트영화같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네요..





뮤직비디오




공연



1982년 발매된 야주의 1집 Upstairs at Eric's



Upstairs at Eric's




Side one


"Don't Go" (Vince Clarke)

"Too Pieces" (Clarke)

"Bad Connection" (Clarke)

"I Before E Except After C" (Clarke)

"Midnight" (Alison Moyet)

"In My Room" (Clarke)




Side two


"Only You" (Clarke)

"Goodbye 70's" (Moyet)

"Tuesday" (Clarke)

"Winter Kills" (Moyet)

"Bring Your Love Down (Didn't I)" (Mo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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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표속에 나오는 선수는 누구일까?

사람과사람/취미와 기록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서울에서 열렸고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한 원년이지만 프로선수가 뛸수 없었던 당시 규정에 따라서 김재박,최동원,김시진,장효조등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선수들의 프로진출을 막아두었던 때.. 아마야구 최강 쿠바가 불참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력이나 홈그라운드임을 감안하면...김재박의 개구리번트에서 막판을 화려하게 장식한 한대화의 홈런으로 극적인 우승까지...

당시 동네곳곳의 공터등지에서 유리창 와장창 깨가며 어른들에게 혼쭐이나면서도 야구를 줄기차게 하던 시절이었고 프로야구의 바람을 타고 형형색색의 각구단 유니폼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구입했던 기념우표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우표도 이전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는데 우표도안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국적불명에 특정스포츠 브랜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의 답변은 당시 도안한 분의 기억을 근거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스케치 했고 특정국적을 부각시키지 않았으며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몇가지 미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자료 링크:[자료]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요판우표 디자인에 대해...
 
우선 브랜드 부분은 미즈노라는 스포츠용품 브랜드는 80년대에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한국으로 밀려올때 반짝했던 부분은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대중적으로는 유명무실한데다 이 우표가 출시될 시점에는 운동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현재는 신발에 표기되는 로고가 바뀐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야구용품으로 유명한 미즈노라는 브랜드는 83년-84년즈음부터 TV에서 광고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이우표 도안당시의 국내에서 스포츠용품의 마케팅적 접근으로서의 브랜드라는 관념이 대중들에게는 희박하던 시절이라고 보는것이 더 합당할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즈노를 보니 당시의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몰려오던 때가 생각나네요. 서독의 브랜드를 인수한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부터 나이키,아식스등등 그리고 수많은 시장판 짜가 브랜드들...

잘못 설명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표속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면 모델이 되었던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인데 도안만 봐서는 누구인지 알수가 없습니다.우표디자이너실의 설명처럼 무명의 고교야구 선수를 묘사한것이라 설명되어도 틀리다고 반박 할수없을 만큼 식별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니면 이의를 제기하신 일본선수라고 이야기해도 그럴수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그당시에 우표속의 주인공이 전설적인 타자인 장훈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이부분을 설명할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으니 박찬호의 61번처럼 선수 등번호를 가지고 알아맞힐 만큼의 골수 매니아가 아니라면 알수 없는 부분이지만 22번이라는 등번호가 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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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이로 이제는 50줄에 접어들었네요.. 숫자로만 본다면 세월이란 무상하기도 하지요..

바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타자였고 현재는 SK와이번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
당시에 이만수는 삼성라이온즈의 선수였던 관계로 출전하지 못했고 국가대표 포수는 심재원선수로 기억합니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막내는 선동열 현재 삼성라이온즈 감독입니다.

이것가지고 추측하기에는 부정확하다는 분들에게 조금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드리면 당시 우표발행 당시에 체신부에서 나왔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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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확대한 모습인데 인쇄물을 보면 M,S,LEE라고 보여집니다. 타격의 포즈만 다르게 묘사되었지 등번호에 유니폼 제기되었던 야구화의 브랜드까지 일치하고 옆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선수시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다른점이라면 사진과 비교하면 얼굴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는점과 봄이나 가을철에 선수들이 입는 얇은 옷을 속에 받쳐입었다는점입니다. 이사진은 말씀드린대로 당시 우표가 발행되었을때 같이 나온 체신부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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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황상 이만수 코치로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에서 답변한것처럼 특정인이나 특정브랜드가 아닌 일반적인 모습을 묘사했다는 설명도 받아들일수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만수 코치라는 부분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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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우표 안내 카탈로그 - 민족기록화 시리즈 우표이야기

사람과사람/취미와 기록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시절 유행처럼 너도나도 우표수집을 하곤 했었습니다.

각종 기념일에 외국 대통령의 방한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외교 순방길에 기념우표들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요즘 우체국에 몇번들락거린 기억으로는 기념우표 카탈로그를 본 기억이 없기에.. 우체국 보험이나 예금상품 카탈로그만 잔뜩 본기억만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기념우표를 발행할때 카탈로그를 주기도 했습니다. 집근처에 우체국이 있지 않았기에(당시 열성적인 친구들은 새벽같이 줄서서 기다리다 기념우표가 나오자마자 구입하는 풍경이 TV에 나오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네 상가의 수집용 기념우표를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하고는 했는데 당시에 운이 좋으면 얻어올수 있는 것이 이런 카탈로그 였습니다.

민족기록화 시리이즈 우표(제1집)
발행일 1982년 6월 15일

아마 저의 우표수집 절정기는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었던듯 현재 남아있는 카탈로그 몇장은 전부 1982년에 나온것이네요 그다지 열성적인 수집은 하지 않았던듯하지만 우표책이 2권정도 있습니다.

사이버우정박물관
우표포털 사이트

광고가 더 재미있네요.. 한글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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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카탈로그중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고 표기된 우표는 실제로 발행된 우표의 그림은 연개소문의 사수싸움이고 당시 발행한지 6개월 후쯤에 한 학부모의 항의로 뒤바뀐 부분이 확인되었고 해당 우표는 판매가 중지되었고 각종 정정공고 및 잔량을 회수해서 폐기했다고 합니다.

관련 링크 - [답변]1982년발행 민족기록화 우표에 관한 질문입니다.

현재 우표포털(http://www.kstamp.go.kr)에 기재된 기록은 정정된 상태입니다.(직접링크가 불가능해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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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탈로그에 나오는 우표의 시리즈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김종서의 육진개척,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이 있네요...
이시리즈 우표는 최초의 그라비어 6도색 우표라고 합니다.

당시에 어린마음이기는 했지만 가끔 TV에 나오던 희귀한 우표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가격이 나오는 것에 휘둥그래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몇십년이 지난후에 이런저런 공상을 곁들이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한 그리 가치가 높은것은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 가령 우표의 도안 인쇄가 잘못된 경우라던가 등등 특이한 경우에 경매시장에서 수집가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오간다는 외신만 어디서 줏어들었던 기억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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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흔하게 볼수 있던 우표책(제가 가진것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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