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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비디오 - 우선 촬영 시작부터..

사람과사람/성장비디오

2004년 출산을 앞두고 아이 초음파 영상을 볼때 별의별 상상을 다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나중에 커서 뭐가될까?

아이랑 무슨 재미있는것을 해볼까?!

영상속에 나오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함빡웃으며 아내랑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무렵 조그만 영상편집실을 운영하던중이었습니다.

결혼전인 2001년부터 장난처럼 시작했던 이일은 아내와 결혼하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고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후에는 많은 분들의 영상을 보게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상물은 업무적인 것들이라 조금은 딱딱하거나 홍보에 치우친것들이었지만 간간히 들어오는 개인분들의 여행기록이나 아이의 성장과정을 담은 영상들을 디지털로 변환하게 되면 지루한 작업임에도 눈여겨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아마 프로들이 만든 홍보용 영상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있기에 예측불가능성의 내용이 주는 일련의 긴장과 이완이 있기는 했지만, 홈비디오는 대체로 촬영된것들이 기술적으로 떨어지거나 그럴수밖에없는 상황일때가 많고 전체 흐름이 두서가 없이 긴편에 속해 지루함으로 치자면 더욱 지루할텐데 오히려 반대현상을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출되지않은 신선함이 있었고 간난아이가 나중에 청소년의 모습으로 나올때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꼼꼼하게 아이의 성장과정을 촬영해두신분들은 대체로 테잎분량이 10여개는 대체로 넘는지라 한쪽 PC를 메인삼아 몇일동안 캡쳐에서 인코딩 및 레코딩 그리고 라벨 출력을 위한 정지화면 추출 및 프린팅까지 수시로 보고 연대기를 따져 시간순으로 정리하다보면 마치 내가 가족이 된것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었습니다. (비용때문에 편집까지 부탁하는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도 짬짬이 정리중인 우리아이 육아비디오 DVD의 표지... 최근 몇년사이에 메모리카드로 저장방식이 대부분 바뀌고 화질도 HD급으로 급격히 바뀌어 DVD는 의미가 많이 반감되긴 했지만 SD급 비디오를 보관하는 방법으로 경제성과 화질을 따지면 이보다 효율이 높았던 대안은 없었습니다. 영상편집실 운영당시에 고객들의 DVD도 이런방식으로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보통 시간순서로 정리

 

DVD표지 - 원본테잎 일련번호와 일자별 주요사항, 스틸사진으로 구성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정리

 

캠코더가 가장 빛을 발할때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아이가 태어날무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조금만 빙그레 웃거나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일희일비할때.. 담아놓는 영상들..

 

당시에 8미리 테잎이나 VHS테잎을 잔뜩 들고오셨던 분들은 대체로 40대는 넘긴편이라 디지털화하는데 대해 무척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DVD로 변환되는게 맞아요? 하면서 반문하시던 분들도 꽤있었습니다. 이 질문에는 두가지 함정이 있는데 나중에는 물어보지않아도 이부분을 친절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두가지 함정은 DVD로 바꾸면 거의 상업용 영화 DVD만큼 화질이 좋아진다는 환상과 영구보존이 가능하다는 환상..

 

개인의 역사기록이라 할 수 있는 영상물들은 세월의 깊이만큼 마음속에 담겨진 감동의 깊이도 크다는걸 의뢰하신 분들의 표정과 말을 통해 알수있었고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깊이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시각적으로 간접적인 체험을 많이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출산이 임박해 캠코더를 디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육아는 매우 힘듭니다. 남자들이 군대경험을 이야기하면 여자들은 출산 및 육아의 예를 들면서 답없는 입씨름을 하기도합니다. 이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출산이후 여자분들의 삶은 자의건 타의건 아이와 한몸처럼 생활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짧을수도 있고 길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지속적인 촬영은 아빠의 몫이될 확률이 높습니다. 영상일을 했던 아내도 아이때문에 정신없을때 카메라를 들이대면 짜증을 낼때도 꽤있습니다. 도와주지않고 촬영만 해댄다고.. 그렇지만 어느정도 시일이 지난후에 촬영한것을 돌려볼때면 힘들어도 찍어두길 잘했다며 웃습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후로 주변에 아이가 태어나면 영상촬영해두라고  하기도했지만 대체로 안하는편이 많았습니다. 이전보다 접근하기는 쉽지만 여전히 동영상 촬영은 불편한 무엇인가 있는데 생각없이 몇번 촬영하다보면 우선 스틸사진 기준으로 이미지 퀄리티가 떨어지고 마구 휘두르며 촬영하면 시각적으로 상당히 불편합니다(초보자분들중에는 이럴 경우에 기기탓을 하시는분도 꽤있습니다) 저도 캠코더를 처음 사용하던 시절 꽤 오랜기간 떨림과 흔들림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는데 대체로 눈은 벌써 공중파방송의 프로페셔널에 맞춰져있고 몇번 이러다보면 흥미가 반감되고 이런저런 이유에 덧붙여저 장롱에 처박혀있다 특별한날 빼고는 쓰이지 않게되는 현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은 메모리카드에 저장되는것들이 많지만 불과 5-6년전만해도 결정적인 이유는 디지털화시키는것의 어려움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PC에 없는 IEEE1394 카드를 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복잡한 편집프로그램에 캡쳐후 그대로 쓰는것이 아닌 영상변환까지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지쳐서 두손들기 일쑤...

 

SD급 캠코더 스틸사진.. 저조도에서 많이 떨어지는 화면..

 

 

최근 몇년사이에 UCC 동영상 열풍이 잠깐 불었을때 이런 부분은 조금씩 바뀐것 같습니다. 더구나 DSLR이나 하이엔드급 디지털카메라에 HD급 동영상 촬영기능이 장착되기 시작하면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기도했는데 이부분은 개인적 생각인데 매우 중요한 변화점으로 보입니다. 사용 편의성은 둘째치고 사진에 어느정도 경험이 있다면 개인용도의 동영상 촬영도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괜찮게 나옵니다. 즉 아주 초보적인 실수들은 하지 않고 나아가 개인 역량에 따라 전문촬영자만큼의 구도를 잡을 수 있기에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물이 나올수 있습니다.  더불어 캡쳐와 후반작업에 들어가는 번거로움이 많이 간소화되었고 HD급 캠코더들이 쏟아져 나올무렵 한때 불만사항이었던 편집의 문제와 저사양 PC에서는 아예 재생조차 되지 않는 현실도 이제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촬영과 편집은 평범한 말이지만 해본만큼 는다는 너무 당연한 말로 귀결됩니다.

 

이전에 작업했던 것들도보면 보통 5-10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는 것들인데 뒤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촬영기술이 좋아지더군요. 구도도 좋아지지만 생초보에게 제일 중요한 손떨림과 마구휘두른 것들이 사라집니다. 물론 물어보면 별도로 배워서 터득한것이 아닌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다만 조금더 일찍 의식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수 있었을테지요...

 

2001년 개인용으로 캠코더를 처음 구입했을 무렵 강화도 마니산에 놀러갔다..

촬영기종은 소니 TRV7

의미없이 마구찍은 화면과 흔들림..

웹용이라 화면이 작아 별로 느끼지 못할수도 있지만 TV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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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출생 사진과 비디오가 담긴 메모리칩 찾아주기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다음이랑 네이버 댓글보다 본것인데...
안타까운일이네요..
저도 몇년전에 개인적인 촬영물을 유실해본적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빨리 찾으시길 바랍니다..



하단은 자꾸 장난전화가 와서 이메일로 바꾸었다는 내용이네요..
트위터나 블로그가 이런형태로 쓰일수도 있네요..

출처: 독설닷컴 http://poisontongue.sisain.co.kr/1562

서울 1009번 좌석버스 타시는 분들 좀 봐주세요. 
메모리 카드만 찾아주시면, 카메라는 그냥가지세요. 

-카메라 기종 : 니콘 P50 -메모리 카드 : sandisk 2.0G
-분실 일시 : 2010년 6월 9일 점심 경
-분실 장소 : 1009번 좌석버스 맨 뒤 오른쪽 창가 좌석


* 메모리 카드에 저희 첫 아기 출생 사진, 동영상 등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아기가 장 수술로 아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 중입니다.
찾아주시면 두고두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연락처 : krock00@empal.com
동그라미 산후조리원 02-485-2152
주소 :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93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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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에 가본 스파게티 전문점 소렌토...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결혼전인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자주가던 스파게티전문점이 소렌토였습니다.
주로 가던 곳은 당시 강남역 사무실과 처가집 중간에 있는 서울대역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결혼전에는 분위기 다음에 실속을 따지게 되지만 결혼후에는 실속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분위기를 생각하리라 여겨집니다.

아마 출산 직후부터 몇년간은 분위기 있는 카페라던지 문화적인 공연관람이라던지 그림의 떡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얼마전에 블로그스피어 상에서도 많은 비판이 오가던것중에 모유수유에 대한 몰상식이었는데(이부분은 저도 아이를 낳아보기전에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라 반성을 해봅니다. 어찌보면 우리사화에서 유년기부터 형성된 딱딱한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인 교육풍토에서 형성된 입체적인 사고가 결여된 결과물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20개월 가까이 모유수유하는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외출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외출은 초긴장 상태에서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이전에는 우는아이 달래느라 한적한 전철역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공공장소에서 애는 왜울려.. 아니면 소설쓰듯 - 유괴나 아동학대라도 하는듯한 - 갖가지 의혹의 눈초리로 여러번 힐끔힐끔 쳐다보던 사람까지...안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미혼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면서 한시간동안 아이를 달랜적도 있었습니다. 우는아기 데리고 다시 전철을 탈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모유를 먹일만한 공간도 없는데다(지하철역 몇군데 있긴 하지만 기억에 의하면 4호선 이수역에 있는 모유수유실은 아주 구석진곳에 개찰구 밖에 있었습니다.편의성이니 뭐니 전혀 고려치않고 생색내기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유가 주는 혜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엄마와 아기의 정서적인 안정감과 유대감이고 모유를 먹인 우리아이는 주변의 분유먹인 아이와 비교하면 확실히 잔병치레를 덜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혼전 데이트할때를 생각하며 도착한 소렌토 안산점은 이전에 가던 서울대역에 있던곳보다 조금 아담한 편이었고 분위기는 체인점이라는 특성상 비슷한 부분이 아직까지 유지되었습니다. 한가지 헤프닝은 이곳에서 발행하던 마일리지 카드가 제 지갑속에 아직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갈때마다 적립된 마일리지와 함께 일일이 표시되던 것이었는데 오래된것이라.. 요즘은 신용카드 쓰듯이 바뀐모양이더군요. 제가 쓸수 있냐고 보여주었더니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아까워라 5천원이 넘게 적립된 것이었는데..

마일리지 카드만 보니 2001년 6월부터 2002년 식목일까지 갔었네요.(식목일은 아내와 제가 처음 얼굴을 대면했던 날입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가능성이 희박한 장난같은 비즈니스 관계로 본것이라 결혼까지 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마 마지막으로 간것은 일주년 기념이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이후에 사무실을 2호선이 움직이지 않는곳으로 갔기에 이곳을 안갔던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에는 육아에다 아침일찍 나가서 저녁늦게 들어오고 저는 토요일도 쉬지 않기 때문에 일요일은 장보고 뭐하다보면 끝나기 일수였습니다. 더구나 여건상 주변에 육아를 분담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곳 안산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데다 결혼후에 거의 이십여년만에 해본 아파트생활은 거주하는 몇년동안 이웃에 누가사는지조차 알기 어렵더군요..

이전보다 메뉴의 단위 체계가 조금 바뀐듯.. 좀더 개인화된 모양새이더군요..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그리고 집에서 스파게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서 먹어본지라 예전에 먹을때처럼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결혼하고 아이낳은 후에 생긴 변화는 특히 집바깥에서 음식을 먹을때 바뀌는 느낌을 받습니다. 점점 한식 친화적으로 변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9월 6일날 예정이 없이 아주 우연히 가서 촬영한것입니다.(조금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유수유할때는 이런데도 가기 어려운점이 있습니다. 굳이 갈려면 갈수 있는데 아주 번거로울수 있기 때문에 피해다닌것이지요.) 다음에는 극장에 가보는걸 도전해봐야할듯한데 과연 온전하게 보는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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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산점 제도와 군대와 육아 이야기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군대이야기는 남자들에게는 엄청난 안주거리지만 여자들은 끔찍히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역으로 임신과 육아에 관한것은 미혼의 남자들에게 흥미있는 이야기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몇년 있으면 민방위도 끝나는 시점이라(조금 서글프기도 합니다)
가산점제도 같은것은 저에게 현실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주마등처럼 스치는 군복무 시절이 떠오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네살배기 아들을 생각하니 전혀 남의 일만도 아닙니다.
20여년후에 과연 우리나라가 모병제로 바뀔까?
통일도 안된 상태고 설사 통일이 되었다 해도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군사대국들 사이에서 모병제 전환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며 주변에 많은 평화적인 장치들이 있다해도
현실적으로 확률 10%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사는 수준으로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한 이리저리 빼돌릴수도 없을테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의아들(군복무면제자. 요새도 쓰이는지 모르겠네요)을 바라지 않습니다.

1991년 의정부에서 기차타고 자대배치 받는다고 좋아했더니만 북쪽으로 끝까지 갔습니다.
훈련끝나고 자대배치 받자마자 유격훈련 받을때 고참들이 엄청 꼬였다며 놀려대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있던곳은 교대로 철책에 들어가는 곳이라 유격을 두번 받으면 엄청 꼬인 상황이긴 합니다.
올해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결국 철책들어가기 직전에 또 받았습니다.
이등병때는 작업의 기억밖에 없습니다. 몇달전에 보도된 타이어사건이 터진곳이 바로 그곳중에 하나입니다.
나무지고 산에오르고(832고지, 높이는 그저그렇지만 산세가 아주 험한곳입니다)
산밑에 텐트치고 몇달 살았습니다(이것은 목적을 가진 탐험이나 캠핑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때는 비상걸려 트리만들다 그 산꼭대기에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되니까 제설작업 아니면 훈련 둘중에 하나만 시키더군요.
눈한번오면 보통 사나흘은 눈만 치우다 볼일 다봅니다.
나중에 철책들어가서는 육십년대에 지어진 막사에서 영하 삼십도가 어떤건지 체험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눈오면 낮에 잠안자고 치우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부식차량이 못옵니다.

우연인지 운이 좋았는지 군대에서 구타당한 기억이 없습니다.
얼차려를 심하게 받았던 기억은 나지만
방독면쓰고 산악구보하기,1시간마다 깨우기,반합에 대가리박고 음악감상하기,한쪽 침상에 발대고 맞은편 침상에 대가리박기등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직접적인 구타를 당하지 않은건 당시로서는 운이 좋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아마 고참들 연애편지 대필을 조금 해줬었고 제대직전 간부들의 자기소개서같은것 쓸때 도움준게 조금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20대때 동안이었는데(지금 제모습을 보면 웃기지 말라고 하지요, 머리도 조금씩 빠지고 배도나오고...지금은 동안열풍도 있고 했지만 당사자는 괴로운일이 꽤 있습니다. 서른살 무렵에 담배살때 신분증보자고 할때는 겉으로는 웃어넘기지만 허탈할때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일상적으로 무례한 경우를 당할때도 많았습니다.) 어딘가 유약해 보이는 점과 아주 가끔씩 면전에서 고참들을 실랄하게 꼬집어 이야기하던 것들이 역으로 작용해 엄청난 유머가 되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또한가지는 바로윗 고참들이랑 8-9개월 차이나는데 나이가 동갑이라 둘이있을때는 야자하면서 친하게 지낸것도 한몫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립중대와 독립소대에서만 생활해서 다른곳과 불필요한 경쟁이 적었던점도 있습니다.

제대한지 14년정도 흘렀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가장 괴로운건 마음대로 할수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육체적 고통 군대에서 몸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사람사는 곳이라 죽을정도로 부려먹지는 않습니다.
신체적으로 불규칙한 생활을 했던 사람은 오히려 약이 될수도 있습니다.
50kg 간신히 넘던 몸무게가 60kg을 넘었던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반대로 비만인 사람은 살이 빠집니다.

군대에서 사고사나 자살이 대부분이지 과로사는 별로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운전병출신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졸음운전으로 아찔한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전방에서 옆중대에서 지뢰밟아 죽었을때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옆산에 있었는데 아침나절에 들려온 폭음에 놀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대대장의 죄인처럼 구겨져있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길이 아닌곳은 가지말라던 철칙이 있던곳이었는데...
문제는 역시 심리적 고통입니다.
사회였다면 도저히 안되면 때려칠수도 있고(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만..)
직업군인이던 당시의 인사계는 장기복무 신청한 애들을 불러놓고 몇번씩 다시 생각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군복무중 사고로 사망한 아들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리 권할만한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자기선택에 따른것과 아닌것은 나중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가산점이 문제시될때 따라오는 것중에 하나는 평등권입니다.
평등이란 것은 균등한 권리를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균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형평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이나 육아가 힘든것은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잘아실겁니다.
미혼이나 아이가 없는분이 머리속으로 막연하게 느끼는 것과는 사뭇 차원이 다릅니다.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군대문제도 비슷합니다 갔다오지 않은 분들이 머리속으로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마초주의나 남성우월주의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초점을 남녀평등권에 대입시키는 것은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이부분은 사안에 따라 각개 적용 시키는 것이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이이야기가 유효하다면 군가산점 문제는 적절한 합의후에 적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솔직히 가산점이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안을 접하고 토의하는 과정에 대한 불만은 생깁니다.

남녀 평등을 떠나 사회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서 적절한것인지 아닌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살다보면 느끼는 것중에 하나가 사회적으로 굳어진 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적절한 평가없이 평등을 논의하면 친일파와 독립운동 후손들의 삶이나 기타 부조리한 사회현상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과 해결방식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 현실이 많아집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씀드리면 미필자나 여자들이 엉뚱한 수혜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산점 문제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 공헌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인색한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마 일정 한도내에서 군필자 우선채용이라던가 이런식으로 접근했다면 저도 반대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 여러가지 현실을 고려하면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조장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과밀한 경쟁을 필요로하는 사회구조를 생각해봅니다)
별개의 문제지만 장애인의 경우는 이런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입이 어느정도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유는 일반인처럼 살아가는데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가산점은 군필자의 잃어버린 시간만큼의 사회적인 배려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임신과 육아로 몇년씩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분은 일정기간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더불어 육아문제로인해 일을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칩니다.
이부분은 일정부분 사회제도적 차원에서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느낄것입니다.
사회적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한 여성의 문제는 사안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개선점에 접근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키는 것이 옳을것 같습니다.
가산점 문제도 비슷한 차원에서 입장이 다르다해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접근하면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혜택을 받는 대상이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사람들도 아니고 다른 각도에서 볼때 입장과 전개된 양상은 다르지만 피해를 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끼리 싸우는 양상이 될수도 있습니다.

우스개소리지만 군필자들과의 평등 때문에 군미필자는 무조건 학교졸업 2년후부터 구직활동이나 시험을 볼수있게 해야 한다는 법을 발의한다면 미쳤다는 소릴 들을것입니다(현실성 전혀없는 농담입니다)

사족으로
육아는 진짜 힘든 영역중에 하나입니다.
가끔 출산과 육아가 힘드냐 군복무가 힘드냐 하는 논쟁을 하는것을 보면 재미있을때도 있지만 씁쓸할 때가 더 많습니다. 결론은 둘다 힘듭니다. 이것은 양비론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의 대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힘든사람끼리 누가 더힘드네 하면서 아웅다웅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힘든점을 격려해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보충대에서 입대할때 입었던 옷을 보내준 저의 옷가지들을 보고 밤새 우셨다는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한
동생의 편지를 읽으며 느꼈던 짠했던 마음을 돌이켜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경제 규모를 고려한다면 개인이 부담해야될 짐이 너무 많고
일정한 공헌에 대한 평가나 보상에 매우 인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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