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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계곡에서 물장난 - 성장동영상

사람과사람/성장비디오

관악산 계곡에서 물놀이 과천방향에서 올라가는길로 예전에 한번 데리고 정상까지 갔다가 아빠가 까무러칠뻔.. 거의 들쳐업고 올라갔다온적이 있는데 다시는 안감.. 이후 초등학교 입학후에 데리고 갔을때는 혼자힘으로 잘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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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2 - 관악산에 오르다 올챙이를 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특히 남자아이들은 엄하게 군기 잡아서 키우는 분들도 있을텐데.. 간혹 열받아서 몇번 시도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하지않기로.... 우선 대외적으로(?) 매우 얌전하고 자기할일 잘하는편이고 간혹 주저할만큼 신중한면도 있기에 이런 성격은 너무 제지만 하다보면 주눅들 것같은 부분이 있었고 그렇게 너무 억눌려 엄한 분위기에서 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사춘기가 오는경우도 있다고합니다. 일반적으로 밖에서 활개치는 아이들이 집안에서는 억눌려있는 상황일 경우도 많다고합니다. 


육아는 크게 상식의 범주를 넘어설 만큼의 극단적이지 않다면 역시 정답이 없습니다. 상대적인 해법과 장점이 있을뿐... 그리고 부모와 유대관계가 깊고 미숙한 부분이 있더라도 믿음에 기초하면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기에 행복한 삶의 한부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때는 놀이가 최고의 스승이라고 보입니다. 요즘처럼 명문대 나와도 취업도 변변치 못한 현실에서는 서열세우듯 지적인 발달만 키울게 아니라 소통을 잘하고 장기간 이끌어나가는 심리적 안정성과 배려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 전면에 나설수 있기를 기대하고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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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 분수대에서 물장난..

사람과사람/성장비디오
더운날 우연히 무엇인가 사러갔던 산본역부근 광장..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벗삼아 장난하는중...

어릴때 비가오다 개기 시작할무렵 흙으로 댐을 만들어가며 놀던 기억이 납니다.
더 어릴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5살무렵 당시 살던곳이 지금의 의왕시...
또렷하진 않지만 집앞에는 냇가가 있었고
옆집살던 누나가 불씨가 아직남은 연탄불에 미꾸라지를 얹혀놓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집에 놀러왔던 사촌형은 지금도 가끔 그이야기를 하곤합니다.

오래전에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분수대에서 기저귀차고 아장아장 놀던 기억이 있는데(찾아봐야겠다..)
산본이나 평촌 그리고 상록수역에 처음가봤을때 대형 상가들 속을 거닐다보면 무언가 낯선것들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분수대에서 놀다 물이 얼굴에 맞은뒤로 재미들려 얼굴을 들이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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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 광정동 | 산본역 4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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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에 가본 스파게티 전문점 소렌토...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결혼전인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자주가던 스파게티전문점이 소렌토였습니다.
주로 가던 곳은 당시 강남역 사무실과 처가집 중간에 있는 서울대역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결혼전에는 분위기 다음에 실속을 따지게 되지만 결혼후에는 실속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분위기를 생각하리라 여겨집니다.

아마 출산 직후부터 몇년간은 분위기 있는 카페라던지 문화적인 공연관람이라던지 그림의 떡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얼마전에 블로그스피어 상에서도 많은 비판이 오가던것중에 모유수유에 대한 몰상식이었는데(이부분은 저도 아이를 낳아보기전에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라 반성을 해봅니다. 어찌보면 우리사화에서 유년기부터 형성된 딱딱한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인 교육풍토에서 형성된 입체적인 사고가 결여된 결과물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20개월 가까이 모유수유하는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외출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외출은 초긴장 상태에서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이전에는 우는아이 달래느라 한적한 전철역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공공장소에서 애는 왜울려.. 아니면 소설쓰듯 - 유괴나 아동학대라도 하는듯한 - 갖가지 의혹의 눈초리로 여러번 힐끔힐끔 쳐다보던 사람까지...안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미혼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면서 한시간동안 아이를 달랜적도 있었습니다. 우는아기 데리고 다시 전철을 탈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모유를 먹일만한 공간도 없는데다(지하철역 몇군데 있긴 하지만 기억에 의하면 4호선 이수역에 있는 모유수유실은 아주 구석진곳에 개찰구 밖에 있었습니다.편의성이니 뭐니 전혀 고려치않고 생색내기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유가 주는 혜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엄마와 아기의 정서적인 안정감과 유대감이고 모유를 먹인 우리아이는 주변의 분유먹인 아이와 비교하면 확실히 잔병치레를 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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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 데이트할때를 생각하며 도착한 소렌토 안산점은 이전에 가던 서울대역에 있던곳보다 조금 아담한 편이었고 분위기는 체인점이라는 특성상 비슷한 부분이 아직까지 유지되었습니다. 한가지 헤프닝은 이곳에서 발행하던 마일리지 카드가 제 지갑속에 아직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갈때마다 적립된 마일리지와 함께 일일이 표시되던 것이었는데 오래된것이라.. 요즘은 신용카드 쓰듯이 바뀐모양이더군요. 제가 쓸수 있냐고 보여주었더니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아까워라 5천원이 넘게 적립된 것이었는데..

마일리지 카드만 보니 2001년 6월부터 2002년 식목일까지 갔었네요.(식목일은 아내와 제가 처음 얼굴을 대면했던 날입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가능성이 희박한 장난같은 비즈니스 관계로 본것이라 결혼까지 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마 마지막으로 간것은 일주년 기념이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이후에 사무실을 2호선이 움직이지 않는곳으로 갔기에 이곳을 안갔던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에는 육아에다 아침일찍 나가서 저녁늦게 들어오고 저는 토요일도 쉬지 않기 때문에 일요일은 장보고 뭐하다보면 끝나기 일수였습니다. 더구나 여건상 주변에 육아를 분담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곳 안산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데다 결혼후에 거의 이십여년만에 해본 아파트생활은 거주하는 몇년동안 이웃에 누가사는지조차 알기 어렵더군요..

이전보다 메뉴의 단위 체계가 조금 바뀐듯.. 좀더 개인화된 모양새이더군요..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그리고 집에서 스파게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서 먹어본지라 예전에 먹을때처럼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결혼하고 아이낳은 후에 생긴 변화는 특히 집바깥에서 음식을 먹을때 바뀌는 느낌을 받습니다. 점점 한식 친화적으로 변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9월 6일날 예정이 없이 아주 우연히 가서 촬영한것입니다.(조금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유수유할때는 이런데도 가기 어려운점이 있습니다. 굳이 갈려면 갈수 있는데 아주 번거로울수 있기 때문에 피해다닌것이지요.) 다음에는 극장에 가보는걸 도전해봐야할듯한데 과연 온전하게 보는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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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표속에 나오는 선수는 누구일까?

사람과사람/취미와 기록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서울에서 열렸고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한 원년이지만 프로선수가 뛸수 없었던 당시 규정에 따라서 김재박,최동원,김시진,장효조등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선수들의 프로진출을 막아두었던 때.. 아마야구 최강 쿠바가 불참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력이나 홈그라운드임을 감안하면...김재박의 개구리번트에서 막판을 화려하게 장식한 한대화의 홈런으로 극적인 우승까지...

당시 동네곳곳의 공터등지에서 유리창 와장창 깨가며 어른들에게 혼쭐이나면서도 야구를 줄기차게 하던 시절이었고 프로야구의 바람을 타고 형형색색의 각구단 유니폼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구입했던 기념우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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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표도 이전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는데 우표도안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국적불명에 특정스포츠 브랜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의 답변은 당시 도안한 분의 기억을 근거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스케치 했고 특정국적을 부각시키지 않았으며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몇가지 미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자료 링크:[자료]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요판우표 디자인에 대해...
 
우선 브랜드 부분은 미즈노라는 스포츠용품 브랜드는 80년대에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한국으로 밀려올때 반짝했던 부분은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대중적으로는 유명무실한데다 이 우표가 출시될 시점에는 운동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현재는 신발에 표기되는 로고가 바뀐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야구용품으로 유명한 미즈노라는 브랜드는 83년-84년즈음부터 TV에서 광고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이우표 도안당시의 국내에서 스포츠용품의 마케팅적 접근으로서의 브랜드라는 관념이 대중들에게는 희박하던 시절이라고 보는것이 더 합당할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즈노를 보니 당시의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몰려오던 때가 생각나네요. 서독의 브랜드를 인수한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부터 나이키,아식스등등 그리고 수많은 시장판 짜가 브랜드들...

잘못 설명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표속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면 모델이 되었던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인데 도안만 봐서는 누구인지 알수가 없습니다.우표디자이너실의 설명처럼 무명의 고교야구 선수를 묘사한것이라 설명되어도 틀리다고 반박 할수없을 만큼 식별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니면 이의를 제기하신 일본선수라고 이야기해도 그럴수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그당시에 우표속의 주인공이 전설적인 타자인 장훈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이부분을 설명할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으니 박찬호의 61번처럼 선수 등번호를 가지고 알아맞힐 만큼의 골수 매니아가 아니라면 알수 없는 부분이지만 22번이라는 등번호가 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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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이로 이제는 50줄에 접어들었네요.. 숫자로만 본다면 세월이란 무상하기도 하지요..

바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타자였고 현재는 SK와이번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
당시에 이만수는 삼성라이온즈의 선수였던 관계로 출전하지 못했고 국가대표 포수는 심재원선수로 기억합니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막내는 선동열 현재 삼성라이온즈 감독입니다.

이것가지고 추측하기에는 부정확하다는 분들에게 조금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드리면 당시 우표발행 당시에 체신부에서 나왔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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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확대한 모습인데 인쇄물을 보면 M,S,LEE라고 보여집니다. 타격의 포즈만 다르게 묘사되었지 등번호에 유니폼 제기되었던 야구화의 브랜드까지 일치하고 옆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선수시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다른점이라면 사진과 비교하면 얼굴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는점과 봄이나 가을철에 선수들이 입는 얇은 옷을 속에 받쳐입었다는점입니다. 이사진은 말씀드린대로 당시 우표가 발행되었을때 같이 나온 체신부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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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황상 이만수 코치로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에서 답변한것처럼 특정인이나 특정브랜드가 아닌 일반적인 모습을 묘사했다는 설명도 받아들일수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만수 코치라는 부분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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