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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명량 - 시대를 초월한 본보기

영상 속으로/영화

솔직히 이순신은 어린시절 너무 귀에 닳도록 들어서인지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십대에 들어서면서 너무 식상한 구시대적 인물 혹은 범접할수 없는 아니면 나중에 모CF에 나온 코믹한 이미지까지.. 이후로 세세하게까지 파고들만큼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이순신을 다시 조우한건 김용옥의 나는 불교를 이렇게본다에서 썩어빠진 조정을 뒤엎을수 있었지만 충신으로 남아있는 이순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대목과 이와 비교해 우리와 일본의 가장큰 차이점이었던 왕권제와 봉건제 사이의 차이로 인한것으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가지지 않는 부분이 비교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최근 이순신에 관한 영화는 박중훈이 나왔던 천군이었는데 물론 가상을 다룬 것이었기에 논의한다는것이 우습지만 가
까운곳에 있는것같지만 그만큼 일반 대중과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었던 인물 아마 이순신만큼 무조건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그의 실제 행적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한것이 일반적인 현실

하지만 매우 매력적인것이 이순신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 알면알수록 대단한 인물인데 사십대 우리세대에서는 박정희시절 정권미화차원에서 이용했을뿐 그는 내가 알고있던 옅은 지식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위대한 인물됨을 알수있는데 강직한 원리원칙주의자였던 그는 불의와 타협함이 없었고 강한자의 비리를 보고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넘어가는것이 없었고 약한자에게는 넉넉한 인품을 보여줬지만 군인으로서의 군율은 매우 엄격히 지키는 공사 구분이 분명했던데다 절대군주임에도 자신을 끝까지 시기하고 권력의 위협적인 세력이 될수있다 생각하면서 두려워한 동시에 폄하하던 선조였건만 그로인한 것들을 알고있었지만 사적인 감정때문에 국가와 백성을 도외시하지 않았던 위대한 인물로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와 명과 일본에서조차 그의 능력과 인간됨을 존중해주던 인물


지난 8월2일 기억에서조차 지워졌던 충남 아산 현충사를 방문

이순신이 서울에서 탄생과 유년시절이후 젊은 시절을 보낸곳으로 현재도 이순신 묘지와 사당이 있는 고향과 같은곳

기억속의 현충사는 전부 사라졌는지 처음보는곳을 방문한 느낌

최근 다니기 시작한 왕릉들과 비교해도 매우 정돈이 잘된 공간으로 입구에는 기념관까지 생긴듯

현충사 방문은 별도 포스팅을 하기로하고


영화 명량은 솔직히 말해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점을 타고 나온 작품 

풀어서 말하면 영화를 잘만들었다기보다는 지금 현재 보고싶은 영웅적 인물을 묘사했다는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느낌


물론 다큐를 바란건 아니지만 비운의 형제로 모두 이순신에 당했건만 강력하게 떠올라야할 구루시마역의 류승룡은 존재감이 너무 없었고 그의 형 수군은 일찌기 당포해전에서 이순신의 함대에 궤멸당했는데 당시 묘사된 것으로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없이 싸우다 화살 열발을 맞고 소리없이 울며 쓰러진것으로 나오는 것으로보아 상당히 용맹한 집안인듯 이부분이 오버랩되었다면 좋았을법하지만 영화에서는 물론 설정이지만 이순신의 칼아래 목이 잘리는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이순신의 대장선은 이날 초반에 혼자 분전하기는 했지만 조선수군에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백병전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고있고 구루시마는 왜인으로 우리측에 귀화한 준사가 이전 상관이던 구루시마의 시체를 바다에 돌아다니는걸 발견했고 이순신이 이를 끌어올리게 만들어 여러토막내고 목을 달아놓았다는 기록 구루시마 집안은 이후 정쟁구도에서 도쿠카와이에야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며 현재는 거의 명맥도 사라진 상태로 초라한 주검없는 묘지만 남은 상태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유일한 희망이던 수군.. 한산대첩을 비롯한 초기의 연전연승은 국토의 대부분을 상실한 실의에 빠진 조정과 백성들에게 최고의 희망이었고 현실적으로 일본군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평양까지 진격해 의주의 선조를 위협하던 고니시 유키나카의 군대를 주춤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전라도까지 내려오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의 무능한 조정은 고니시측이 짜낸 머리로 정유재란 당시 라이벌이던 가토기요마사의 군대가 부산으로 재차 침공할것이라는 정보를 흘렸고 물론 가토기요마사가 패하길 바랬다기보다는 이순신을 공격하거나 모함을 하기위한 수단이었는데 이런 노림수를 못알아채 빨리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이순신은 당시 부산과 부근의 왜성들로인해 자칫 역공격당할것이란 판단아래 움직이지 않았는데 좁쌀마인드 선조는 이를 왕명의 거역이라면서 이순신을 잡아들였고 이순신에 비하면 많이 역량이 모자란(무장으로서의 용맹은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그는 이순신에 비하면 전략적 머리라는 측면에서는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우습게 보이는 평범한 인물) 원균이 등용되었고 그역시 미적거렸지만 권율의 곤장까지 맞아가며 출전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거의 궤멸상태로 빠트리면서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초래 이런 상황에서 선조의 사과까지 받으면서 다시 나서게된 이순신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었고 여기까지가 명량대첩이 있기전 상황..



영화는 몇가지 설정들이 사실과 다르기는 하지만 2시간이라는 제약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배설의 이순신 암살 및 안위의 화살에 죽는 장면은 영화적 픽션 물론 배설이 신병을 핑계대고 도망간것은 맞지만 그의 이전 이력은 원균 함대에서 도망친 12척의 배를 이끌로 나온 인물로 결과적으로는 이순신의 마지막 전력이 되어주었고 그는 전란이후 이후 권율에게 붙잡혀 참형당했고 구루시마의 이순신 저격수와 폭파선과 사라지는 임준영 역시 전체적 상황 묘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위한 영화적 설정.. 다만 한동안 제기되었던 쇠사슬을 울돌목 지형에 이용했을것이란 추측은 나오지 않았는데 현재로서는 쇠사슬 이용은 없었다는것이 대부분의 중론 그러나 명량대첩당시 인근의 백성들이 어선을 끌고나와 뒤에 배경처럼 서있어 조선수군의 규모를 왜군들이 오인케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대장선을 꺼내려는 장면은 설정이라해도 너무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한시간 내내 펼쳐진 해상전투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몰입감을 가져왔지만 역시 상상을 충족시켜줄 정도는 아니었는데 앞으로 나올 노량과 한산도에서는 어떻게 묘사를 해줄것인지..


지금 현재시점에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 이토록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것은 매우 어려움에 처한 현재의 상황을 생각케해주는 것인데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엉망진창인 조정과 그세력들 그리고 그러함에도 온갖 악조건속에서도 개인의 안위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타개해가는 영웅의 모습에서 감정이입을 해나가는것으로 영화를 보는중 몇번 울컥거리기도했는데 



하지만 결국 명량이후 이순신은 노량에서 영웅적 모습으로 죽어갔고 이후 많은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고니시에 매수된 명나라 제독 유정의 명을 따르지 않고 노량해전에 출전을 감행 이전에 이순신의 인품에 감화된 진린 제독까지 합세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갑옷을 입지않은 상태로 추격하다 탄환에 쓰러지면서 유명한 말 나의 죽음을 알리지말라는 이야기를 남겼는데 자살설이나 은둔설등 있기는 하지만 억측과 추측일뿐 개인으로서 분명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했겠지만 그의 어릴때부터의 행적을 살펴보면 불의를 보면 상대가 누구이던간에 참지못하는 성격과 올곧은 심성 무관이지만 선비같은 꼿꼿한 모습을 보여준 그였기에...


어릴적 역사 선생님들은 모두 지적이고 예리한데다 선각자적 모습까지 갖추신 분들이었는데 요즘은 역시 여기에다 재미가 있어야하는듯..


설민석 인강 - 명량


2004년부터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김명민의 불멸의 이순신을 못봤는데 사극을 좋아하는데 왜못봤을까 생각해보니 당시 아내가 임신중이라 시끄러운 폭음이 싫다기에 못봤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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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 아쉬운점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저번주 토요일 8월1일

전쟁기념관이란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아이 때문에 아내와 친구가된 분이 가볼만 하다고 해서 방문..
삼각지역에서 내려 도보로 2-3분 들어서자마자 각종 기념비들과 육해공 전투장비들..

전쟁기념관 웹사이트 바로가기



  • 전쟁기념관
  • 문화,예술 > 문화시설 > 기념관
  • 주소 : 서울 용산구 용산동1가 8번지
  • 전화번호 : 02-709-3139
  • 전쟁을 주제로 우리나라를 지켜온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기록과 유물을 전시해 놓은 기념관 더보기







30여년전쯤으로 기억되는 어린시절 가보았던... 여의도부근으로 기억하는... 안보전시관이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보았음직한 비행기와 탱크등등..
보라매공원에도 몇개 있는데 이곳에 비하면 새발의 피...


공교롭게 비가오려는지 천둥번개가 계속 반복.... 밖에서 계속 둘러보다 한두방울 떨어지는 시작..
실내로 들어가 표를 끊고... 점심을 먹으로 매점 비슷한 식당으로... 사람은 무지 많았고...
냉동식품으로 보이는 자장면과 돈까스 등등... 셀프서비스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올걸 하는 생각...

집으로 갈무렵에 촬영.. 날이 개었슴..



이곳 전쟁기념관은 그동안 있었던 전쟁의 기록과 유물을 실물로 볼수 있다는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혼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로서 가치를 지니는 곳입니다. 다소 딱딱해질수도 있을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역사적 유물과 실제 재현 및 체험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전쟁이 지니는 의미와 자주의 의미에 대해 아이들의 자연스런 관심과 생각을 도출할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쓰던 칼(맨앞)


이순신장군의 거북선을 재현한 전시관 1층


오래전 음향 영상장비들


녹음기와 타자기


영사기와 8미리,16미리 무비카메라와 사진기.. 어릴적 우리집에 잠시 굴러다니던..


아쉬운점

일부 관람객 제어 및 유지보수
관람을 하다 몇몇 재현된 모형들은 천정과 유리벽사이에 공간이 있었는데 아이들 장난으로 추정되는 동전 및 여러종류의 오물들이 들어있고 이로인해 재현된 모형들이 부서진것이 보이기도.. 심각한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할듯.. 관람을하다 모형속으로 많이보이는 동전을 보고 얼결에 아이에게 쥐어주려 찾아보다 순간 아차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적 무지하게 뛰어놀던 팔달산의 수원화성.. 재현한 모형..


곳곳에 떨어진 동전들..


무심코 던진 동전때문에 조금씩 훼손...


국방부관련 건물을 재현한 모형.. 곳곳에 휴지와 동전들..


무너진 골대...


누군가 날려버린 종이비행기..


전쟁기념관이라는 많은 측면은 무거운 의미를 내포한것이고 주권을 지키기위한 힘의 사용이라는 측면의 부각이 매우 중요하지만 주로 이용 관람객이 아이들이나 학생들임을 감안한다면 관람동선 마지막 부분에 전쟁의 억제 혹은 전쟁을 넘어서는 평화에 대한 표현 공간을 만들지 않은점이 조금 아쉽기도...

옥외 전시장에는 헬기부터 전투기 수송기 각종 전차와 탱크 포 상륙용 배와 잠수함까지 실물을 볼수 있는데 구소련의 무기도 간간히 있슴.

헬기 앞쪽의 스피커가 눈에 띄기도 군복무시절 전방에서는 매일 남북한 양쪽이 방송을 틀었는데 그 당시에 사용하던 스피커로 추정.. 사람키보다 높으니 3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방공포... 만져보는 즐거움 한쪽에는 씁쓸함도.. 어느순간 미래소년 코난이 떠오르기도


전시실 3층에 625 전쟁당시 상황을 체험하는 전장체험실이 있는데 초등학생 이하는 출입을 권하지 않아 안들어갔고 그옆 비상대비 체험관에서는 소화기 사용법과 방독면 착용법을 교육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유익한 체험입니다.

아이가 충무함같은 배안의 재현이나 실제로 올라가보는 당시 수송기 내부 체험에 시큰둥 하기에 생각해봤더니 과천과학관이며 그동안 다녔던 여러가지 전시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것들이 많아서인듯.. 앞으로는 공연장에 데리고 다닐까 생각중입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 전쟁기념관
도움말 Daum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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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이용한 LG그룹 광고

영상 속으로/화제집중
1탄 - 번외편


2탄


UCC 동영상을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재미를 많이본 대기업은 LG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작년에 선보인 휴대폰 광고나...
3D로 부활한 명작들을 보니 기발하네요.
(개인적으로 3차원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배울때 상상하던 것중에 하나였습니다. 몇년전 꽤 추운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마티스전을 봤던것 같은데...작품은 촬영을 못하게해서 주변만 촬영했던 기억이납니다...)
2탄은 인터넷을 통해서 먼저 공개되고 6월 16일부터 공중파에 나올 예정이라합니다.

블로그의 관련글:
2007/08/25 - [초보의 영상활용/보관 및 활용] - 카렌스포머와 남태희 - SCC 혹은 CCC
2007/08/20 - [UCC 동영상 속으로/화제집중] - 남자 김태희.. CF에 등장

올해는 생각보다 경기도 어렵고 국내외의 여러가지 그다지 즐겁지 않은 현상이 동시에 생겨 우리같은 서민들이 점점 힘들게 되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재미있는 현상 가운데하나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많은 축소를 추측했던 UCC 동영상 서비스 업체 특히 라이브 인터넷 방송을 주로했던 동영상 서비스 아프리카의 이명박 수혜(?)를 받는것이 참 묘하네요... 더구나 아프리카같은 상대적으로 군소업체(?)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공룡포털 네이버의 항복을 받아내게된 계기중에 하나로 작용하게 되기까지..

민주주의 2.0이라 불리는 현재의 의의들은 역동적인 기질과 더불어 질곡의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축적된 시민사회가 가진 행동양식상의 커다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웹2.0의 기폭제로 작용한 블로그의 발전이 기존 언론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급부상했다면 UCC 동영상은 또다른 파급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중파의 영향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미디어 권력이 이동하는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아프리카 같은 형태의 라이브 방송이 게임을 실황 중계하는등의 일부 매니아들의 전유물 혹은 영화 혹은 공중파나 케이블의 불법 상영형태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또다른 형태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디지털을 최대한 활용한 민주주의와 명박산성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대한민국... 씁쓸하지만 이런 현상 자체가 시대의 자화상이 되고있습니다.

이순신의 수난시대... 메가패스 CF 출연하실때만 해도 그냥 웃어넘길 정도의 취향 차이로 위로하며 극복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컨테이너 명박산성아래 촛불 환히 밝혀진 곳에서 큰칼차고 서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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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우표 안내 카탈로그 - 민족기록화 시리즈 우표이야기

사람과사람/취미와 기록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시절 유행처럼 너도나도 우표수집을 하곤 했었습니다.

각종 기념일에 외국 대통령의 방한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외교 순방길에 기념우표들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요즘 우체국에 몇번들락거린 기억으로는 기념우표 카탈로그를 본 기억이 없기에.. 우체국 보험이나 예금상품 카탈로그만 잔뜩 본기억만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기념우표를 발행할때 카탈로그를 주기도 했습니다. 집근처에 우체국이 있지 않았기에(당시 열성적인 친구들은 새벽같이 줄서서 기다리다 기념우표가 나오자마자 구입하는 풍경이 TV에 나오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네 상가의 수집용 기념우표를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하고는 했는데 당시에 운이 좋으면 얻어올수 있는 것이 이런 카탈로그 였습니다.

민족기록화 시리이즈 우표(제1집)
발행일 1982년 6월 15일

아마 저의 우표수집 절정기는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었던듯 현재 남아있는 카탈로그 몇장은 전부 1982년에 나온것이네요 그다지 열성적인 수집은 하지 않았던듯하지만 우표책이 2권정도 있습니다.

사이버우정박물관
우표포털 사이트

광고가 더 재미있네요.. 한글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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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카탈로그중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고 표기된 우표는 실제로 발행된 우표의 그림은 연개소문의 사수싸움이고 당시 발행한지 6개월 후쯤에 한 학부모의 항의로 뒤바뀐 부분이 확인되었고 해당 우표는 판매가 중지되었고 각종 정정공고 및 잔량을 회수해서 폐기했다고 합니다.

관련 링크 - [답변]1982년발행 민족기록화 우표에 관한 질문입니다.

현재 우표포털(http://www.kstamp.go.kr)에 기재된 기록은 정정된 상태입니다.(직접링크가 불가능해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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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탈로그에 나오는 우표의 시리즈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김종서의 육진개척,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이 있네요...
이시리즈 우표는 최초의 그라비어 6도색 우표라고 합니다.

당시에 어린마음이기는 했지만 가끔 TV에 나오던 희귀한 우표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가격이 나오는 것에 휘둥그래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몇십년이 지난후에 이런저런 공상을 곁들이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한 그리 가치가 높은것은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 가령 우표의 도안 인쇄가 잘못된 경우라던가 등등 특이한 경우에 경매시장에서 수집가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오간다는 외신만 어디서 줏어들었던 기억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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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흔하게 볼수 있던 우표책(제가 가진것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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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댓글을 찾아서...

사람과사람/운명적인 만남
공지에 적힌대로 블로그 계정을 이전한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테터툴즈에서 티스토리로 이전해서 데이터는 전부 살아났지만 국내외 메타블로그에 등록된 RSS 주소를 모두 수정했던 기억이납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것들은 이전주소로 달았던 댓글들입니다.
티스토리의 댓글알리미에서는 이전 주소로 작성된 것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얼마안되 많지는 않지만 몇개가 더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소중한 소통의 기억들을 잊어버리기전에 찾는 중입니다.

아래 댓글은 가끔씩 들르는 Goldenlog님의 블로그에 달았던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의 댓글은 블로그 주소가 바뀌어 해당 링크를 수정했더니
댓글을 쓴 날짜는 5월17일이고
Goldenlog님의 답글은 4월 27일로 나옵니다.

블로그 초기에 제블로그에서 reply 메뉴를 누르지 않고 답글을 달았던 기억도 납니다.
답글을 기다렸던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이자리를 빌어 하고싶습니다.

Goldenlog님은 경험에서 나오는 포용력이 넓으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적용할수 있을만큼 젊게 사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해당 블로그에 작성하신 글을 이것저것 보다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습니다.

Goldenlog님의 원문 - 패거리문화는 우리가 극복해야하는 가장 원천적인 악습 
                              작성된날짜: 2007년 4월 21일

아래는 달았던 댓글입니다.

제 생각에 패거리 문화는 어느곳이나 존재합니다. 문제가 되는것은 원칙과 정도차이때문이지요. 뒤집어서 말하면 패거리문화를 없앤다는 접근법은 생산적이지 않고, 어떤식으로 표출이 되게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것이냐가 현실적인 접근이 될듯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의 당쟁을 들수 있는데 4개의 대표적인 파당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나라를 보면 일본이나 유럽같은 곳은 그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몇백개의 자치적인 집단들이 존재한것을 알수있습니다. 하나의 전제군주 아래에서 중앙정부의 통제에의해 언제든 짤리수있는 관료와, 군주의 통치가 마음에 안들고 힘만있다면 반기를 들수있는 영주는 운신의 폭이 다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그런식의 봉건적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이부분은 김용옥의 8-90년대에 나온저술 곳곳에서 알게된 견해들입니다)

이부분은 구획된 개인화의 경험이 별로없는 한국적 특성의 한부분이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장점이 되는시점과 단점이 되는 시점이 존재하겠지요. 지금처럼 나만 잘되고보자는 패거리문화가 만연하면 단점이 되고 어려운 시기의 국난극복의 사례를 보면 장점이 될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향의 에너지들을 어느방향으로 끌고가느냐가 중요한점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봉건적인 경험의 부재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지나간 흐름을 본다는 관점. 사회든 개인이든 모든것을 다 경험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험의 부재가 꼭 나쁜쪽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면 요즘 방영중인 연개소문에서 묘사되는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가지는 차이점입니다. 둘다 국가에 충성하지만 전제군주에 대한 입장은 다른면모를 보입니다.추구하는 목적이 같았기에 나중에는 동화될수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사료가 별로없기 때문에 해당작가의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역사적으로 양만춘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을 영웅으로 여겨왔습니다(대표적인 예가 이순신, 패거리문화의 희생자이기도 하며 한개인으로 보면 인간승리의 모습입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개인적으로 존경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모두 참아가며 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사회적인 불만이 극에 달하면 민란이 발생했지요.
역사적으로 민란이 아주 많았던 국가중에 하나지만 전제군주를 물리치기위한 목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사의 불행은 군사독재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야 7-80년대에 어렸기 때문에 피부로 체감하진 못했지만 갖은 고난의 현대사의 진행중에 대단원을 장식했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아주큰 달콤함이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잃어버린 것들이 미래의 짐이 되었습니다. 통치자의 입장에선 이순신이나 양만춘같은 능력과 더불어 일단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과정에서 솔직히 이순이나 양만춘만큼의 걸출한 능력이나 시대적 양심은 떨어지지만 충성심하나만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고 불행하게도 균형을 잡을수 있는 합리적인 반대세력이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예를들면 장준하, 돌베개란 책을보면 사람됨을 알수있을듯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힘도없는 사람이 양심적으로 행동하는것은 불이익이 더 많이 돌아옵니다. 현실적인 계산이 빠른 사람은 사회적인 가치니 의미를 떠나서 이익을 취할수 있는곳에 줄을대게 되어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개인입장에서 고의적으로 남 괴롭히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쓰지않고 융통성을 발휘해 열심히 산다면 뭐라말할사람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이익을 위해 공정한 경쟁은 도외시하고 다른대상을 밟고 올라서야 될때, 더나아가 사회전반에 이런풍조가 굳어져 있고 집단화되면 자의든 타의든 목적을 위해선 무슨일이든 할수있는 집단들이 사회전면에 대두됩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식은 당연히 없습니다. 이미 사회 깊숙히 자리잡았기에 오히려 그런 행위를 취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됩니다. 자신에게는 다른집단도 그렇다는 면죄부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이부분이 어설프게 처음에 말한 원칙이나 정도차이의 현실적인 모습중의 한가지 단면입니다.
사람사는 모습이 완벽하지 않기에 개인차원에서 만들어지는것들은 실수도 있을수있고, 개선의 여지도 있고,
억울한 모습도 있을수 있지만 집단화되면 개선하기 상당히 힘듭니다.
어찌보면 굳어진만큼보다 몇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부분을 어떤 영웅이 나타나 확 휘어잡는듯한 상상은 옳지 않습니다.우리나라 현실이 다층화되었기에 어떤 특정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단순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출발점은 역시 개인적인 자정능력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개인들이 바꾸어 나가기 시작해야지요. 집단이 먼저 만들어진 상태에서 고쳐나가는 것은 현재의 모순을 다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제생각에 현재상태에서의 출발점은 개인의 일상생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부분이 어느정도 이루어져 저변이 늘어나면 집단화 되어도 쉽사리 변질되지 않을듯합니다.
집단화가 먼저되면 나찌의 경우처럼 될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처음 나왔을때는 전국민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미국같은 경우는 국가차원에서 엄청난 힘을 가졌고, 자신들의 힘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유치하고 불합리하지만 깨어있는 개인들이 사회곳곳에 있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족으로 유교를 체험한 국가에서 볼수있는 현상인데,일본의 학자중에 마루야마마사오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양심적인 학자인데 2차대전 직후에 전범재판을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독일의 전범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는데 일본의 대표적 전범들은 모두 발뼘을 했답니다. 이부분을 연구했는데 전범들의 변명은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그래서 자신은 어쩔수 없었다는 명분론이었습니다. (현대일본정치론,고려원 이책은 나온지 오래되서 아마 절판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유교를 부정적인 의미로 묘사한것이 아니라 나쁘게 적용되면 이런현상이 나올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부분은 어떤 종교에 대입하더라도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습니다. 종교는 믿는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서 작용하는것이지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면 좋다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란만 가중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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