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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시국선언 혁세격문 듣기 - 이상호 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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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세격문革世檄文




도올 김용옥
 
지금 조선의 들판이 혁명의 불길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지금 조선의 먼동은 “다시 개벽”의 눈부신 햇살을 발하고 있다. 자고 있는 자들이여, 모두 깨어나라! 새 시대, 새 정치의 함성이 그대를 부른다. 깨어난 4천만의 유권자들이여,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투표장으로 가라! 19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혁명의 물결이 이 아사달 신시를 휘덮으리라! 조선의 깨인 자들이여! 남김없이 혁명의 대오에 어깨를 엮어라!
 
환인 하느님께서는 이 신시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거룩한 건국 치세이념을 내리셨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지금 우리는 홍익弘益이 아닌, 홍해弘害, 홍살弘殺의 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인의仁義를 망각하고 솔수식인率獸食人의 사리私利를 앞세우며, 진현進賢의 정도正道를 거부하고 착복과 부패의 한계를 없이 하며, 국고를 털어 치자治者 본인의 사욕을 충족시키며 주변의 승냥이들에게 떡고물을 분배하고 있다. 국토의 산수대강山水大綱을 파괴하고 4대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왜곡·오염시키며, 백두대간의 대혈인 국립공원에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케이블카의 설치를 획책하고, 인천공항과 같은 공익의 자산을 사유의 질곡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농촌을 해체시키고 도시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양극화의 괴리는 재벌의 독재를 흥륭興隆케 하며 서민대중의 삶을 노예 이하의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추락은 영락이요 죽음이다. 그런데 서민대중의 죽음을 현 정권의 치자들은 환호하고 재벌은 환희의 박수를 친다. 그리고 전국 골목골목의 상권을 대형마트라는 탱크와 기관총으로 후려 갈겨대고만 있다. 어찌 미국의 총기난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쳐다보고만 있는가? 자기 가슴에 총알이 박히고 있는 바로 그대들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우리가 지도자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민이 교사巧邪와 허언虛言의 달인達人을 지도자로 떠받들 수 있는가? 민주라는 허명에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메이저 언론의 정보조작과 선거를 둘러싼 가치의 혼란이 민중의 너무도 정당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중이 민주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호도하는 온갖 정교한 부정이 민주주의라는 타자他者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이여! 또 당할 셈인가? 현 정권의 죄악을 반성 없이 반복할 셈인가? 이제 또 안보의 위협에 대책 없이 속을 셈인가? 마지막 순간을 앞둔 깜짝쇼에 대의大義의 정조情調를 굴복시킬 셈인가? 민생의 감언에 또다시 도덕을 망각할 셈인가? 민중이여! 두 손에 가슴을 얹고 잘 생각해보라! 누가 과연 그대들의 민생을 도와주었는가? 누가 과연 그대들에게 돈 한 푼이라도 거저 준 적이 있는가? 민생은 아사달의 신시로부터 지금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민중 스스로 해결해온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민생은 어디까지나 민중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민중의 간절한 염원이란 그 민생결단의 번영을 훼방하는 행위를 정치가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일 뿐이다. 오늘과 같은 악랄한 대기업의 횡포는 정부와 공권력의 비호가 없다면 당장 민중의 힘으로 타도될 것이다. 기업과 정부권력의 유착, 자본의 끝없는 폭리확대와 공무행정의 부패의 연환連環은 대중민생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 희생에는 이제 부르죠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자산가, 임금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대중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공약으로 “민생”을 우선시 한다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요 위선자일 뿐이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민생이라기보다는 도덕의 구현이며 정의의 확립이요 인정仁政의 구체적 실천이다. 위장된 웃음의 눈꼬리를 가장하며, 정의와 도덕을 외면하고 반성과 실천을 거부하는 위선의 심장에 이제 종지부를 찍자! 더 이상 속지 말자! 민생이 아닌 도덕의 기강을 바로잡자! 그리하면 민생은 저절로 해결된다. 도덕이 바로서고 민생이 풍요롭게 되지 아니 하는 역사는 인간세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도덕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그 너무도 쉬운 해결방안이 그대 손에 쥐어져 있다. 부패와 사악의 정권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바꾸는가? 투표장으로 가라! 그대의 신성한 혁명의 권리를 행하라! 나와 같이 수십만 권의 장서를 수십 년에 걸쳐 뇌리에 입력한 자나, 만 20세의 청순한 홍안의 유권자나, 동일한 한 표의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인간 오성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신념은 반만년 인문정신의 기나긴 투쟁의 결과로서 획득된 것이다. 어찌 이 고귀한 권리를 나태와 냉소와 방임으로 포기할 셈인가? 혁명은 어렵지 않다. 유권자의 90%만 매번 투표에 참여한다면 역사는 항상 선을 지향하며 뒤바뀌게 되어있다. 그런데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투표장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세력이 과연 수권受權의 자격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국가기관이나 공영언론조차도 투표를 독려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직무유기를 일삼는 것이다. 국민이여! 분노하라! 분노하라! 실상을 직시하라!
 
과거에는 최고의 권좌, 그 천명天命을 바꾸는 혁신革新의 대업에는 수없는 인명의 희생이 있어야만 했다. 삼일운동을 기억하라! 동학의 우금치전투를 상기하라! 정주에서 폭파된 홍경래의 염원을 다시 한 번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처절한 고립무원의 항쟁이었던가? 그대들이 손에 쥐고 있는 투표용지는 이들 선열先烈의 잘린 모가지처럼 피가 흐르고 있다. 민주의 나무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랐다. 대한민국처럼 비서구권에서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을 수용하고 직접선거의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정권의 평화로운 교체를 이룩한 선례를 축적하여온 나라도 별로 없다. 이것은 오직 선현先賢들의 피흘림의 투쟁으로만 가능하였던 것이다.
 
체제 밖에서 천 리를 가는 것보다 체제 안에서 한 치를 가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체제 안에서 천 리를 갈 수가 있다. 우리 민중 모두가 19일 투표함으로 가기만 한다면 혁명은 이루어진다.
 
혁명은 왜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가? 이제 혁명은 폭력이 아니다. 이제 혁명은 광포한 영감이 아니다. 이제 조선의 혁명은 체제의 룰에 따라 도덕의 기강을 바로잡는 정의로운 상식적 작업이다. 그러나 이번 우리의 혁명은 바스티유감옥의 철창을 터뜨린 불란서인들의 인권선언보다, 차르왕정을 무너뜨린 러시아혁명보다, 아편전쟁 이래 열강의 침탈을 종식시킨 마오쩌똥의 공산혁명보다도 더 막중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혁명이다. 우리의 혁명은 열강의 모든 근대적 노략질과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결과물인 세계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진정한 세계평화의 출발이다. 동·서의 언어적 편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며 남·북의 불필요한 이념의 기미羈縻를 절단하며,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회복하고, 도농都農의 균형을 꾀하고, 세조의 찬탈 이래 끊임없이 왜곡되어온 정의의 패배를 설욕하는 대업이다. 훈구파들의 끊임없는 득세, 선조의 파렴치한 임란책임회피, 그 뒤로 이어지는 노론의 장악, 세도정치, 일본제국의 식민지통치와 친일파의 발호, 이승만의 권력찬탈과 무능한 6·25전쟁대처, 일제 만군출신 박정희의 쿠데타와 유신폭정, 이 모든 흐름이 “불의라도 박박 우겨대면 역사의 정의가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에 대한 통렬한 국민적 반성의 기회를 박탈해왔다. 반성이 없는 역사는 미래가 없다.
 
올해가 임진왜란 일곱 환갑! 그 부끄러운 통치자들의 행위가 빚어낸 참혹한 민중의 삶을 일순간이라도 연상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의 좌표는 명료해진다. 그대들은 아는가? 가도입명假道入明의 명분으로 이 땅을 짓밟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침략군의 저주보다, 이 나라를 구해주겠다고 원정 온 명군明軍의 작태가 민중의 삶에 끼친 폐해가 구체적으로 더 심원했다는 사실을 그대는 정말 아는가? 임란의 극복의 원동력은 이순신의 서남해상권 제패와 수군의 활약과 의병의 분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의 진로를 선택해야만 했고, 의병장 김덕령은 모진 고문 속에 죽어야만 했고, 홍의장군 곽재우는 신선을 가장하고 소리 없이 스러져야만 했다. 선조는 이들 구국의 지도자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명군의 “재조지은再造之恩”만을 찬양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여송의 사당을 만들었고 명군을 위하여 동대문 밖에 관묘를 지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다시 만들어주었다는 은혜, 즉 재조지은의 찬양은 결국 불과 30년만에 정묘·병자의 양 호란胡亂이라는 처참한 비극을 다시 불러왔다. 이러한 민중의 비운의 역사의 배면에는 6·25전쟁 등 현대사의 명암이 겹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다. 그러나 우리의 친미는 미국과의 정당한 거리감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을 도덕적으로 만들어주는 인도주의적 친미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남·북한의 화해를 돕도록 만들어야 하며, 역으로 우리는 남·북한 화해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여 세계평화를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21세기 인류 최대의 염원을 달성케 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민생民生이라기보다는 민본民本이다. 민중 스스로가 자결의 주체성을 갖는 역사를 갈망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손에 쥔 투표용지 하나로 인류의 역사를 전쟁과 대결의 국면에서 평화와 화해의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사의 기나긴 좌절과 절망을 승리와 희망으로 회향시킬 수 있다. 보도연맹사건으로 학살된 30만 우국지사들의 원혼을 기억하라! 좌절된 반민특위의 역사를 반성하라! 이제야말로 우리는 투표용지 하나로 반민족행위자들의 작태를 일소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투표장에 국민이 오는 것을 꺼려하는 모든 반민족행위자들의 생애에 종막을 드리워라! 그것도 아주 평화롭게! 19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 땅의 깨인 자들이여! 모두 남김없이 투표장으로 가라! 그대들의 투표가 이 민족 모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리라. 주변의 모든 동포를 설득하여 투표장으로 가라! 이 민족의 기나긴 불의와 독선과 배타와 불인不認의 역사를 끝장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아갈 수 없다! 모든 반동은 그 자체의 힘에 의하여 분쇄된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투표장으로 가라!
 
2012년 12월 17일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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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뉴스 호외 도올 김용옥 대선 특강 동영상

영상 속으로/화제집중

점점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중..

지난 대선에서는 블로그 UCC가 주목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단연 SNS지만..

SNS는 제대로 만들어진 콘텐츠 기반이 없으면 사상누각..

SNS가 유통업에 가깝다면 글이나 영상 사진등의 매체는 생산기반에 가까운것..


이상호기자의 발뉴스 호외


도올 김용옥 대선 특강 전체 듣기


주제에따라 분할된 동영상

발뉴스 호외 도올 대선특강 1.지는해 미국을 넘어라.. 대선의 의미



발뉴스 호외 도올 대선특강 2.노무현 극복한 문재인.. 안철수 뇌사위험



발뉴스 호외 도올 대선특강 3.정봉주, MB시대가 낳은 최고인물



발뉴스 호외 도올 대선특강 4.박근혜 페어플레이해야.. 터널디도스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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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의 도올 김용옥비판을 읽고...

도서관환상/인물

1. 김용옥비판서

김용옥 비판서는 오래전부터 여러권이 있지만 대부분이 스타일이나 비판받는 김용옥보다 더 황당스럽게 주관적이라 부를수 있는 부분에 국한지어진 혹은 비전문가들에게는 판단이 어렵게 보여질 수 있는 것들로 한정적이어서 진위여부나 수용의 측면을 형량하기 어려웠습니다.(즉 흥미위주로 수용되는 형편에 가까웠습니다.. 90년대 초반부터 봐왔던 서적형태로 나온 비판서들은 신나게 까발기거나 두루뭉실하게 같이가는거라는 학문이라기보다 처세술에 가까운 이야기들까지...)

김용옥의 저술을 처음접할때는 자신이 가진 주요 가치의 잣대들이라고 할수 있는 주제들과 맞닿으면 텍스트 자체가 가져오는 흡입력과 반작용으로인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한 반향을 줍니다. 김용옥 비판서를 진중하게 읽지 않았던 이유는 그를 도저히 넘을수 없을만큼의 지식이나 영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인생각에 그가보여준 저술들은 특이한 스타일과(어디에선가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은 김용옥 글의 긴호흡과 그럼에도 잃지않는 말하려는 메시지의 지속적인 긴장감을 칭찬했다고 하던데...) 박학이 넘치고 그의 에너지가 넘치는 초기 저술에 보면 주관적이라는 치명적 특성임에도 흡입력을 가지게하는 특징적 부분가운데 하나인 방편설법같은 맥락과 상대성에 기댄 주관적 방법론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방편설법이라는 것은 때때로 부메랑이 되어 꽂히기도 합니다.. 김상태의 비판에는 현재시점에서 김용옥이 받아야할 정당한 비판 몇가지가 있기에.. 연말인가 올초에 나왔다는 도올의 국역본 논어를 아직못봤지만 그가 상당한 기대심리를 부추긴 상태에서 이야기했던 조선사상사나 기철학 혹은 그가 제기했던 방법론을 실천적으로 풀어내는것은 기대했던 것보다 미진했거나 혹은 지나친 호언으로 비춰질법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지면으로 약속하고 이야기한것에 비해 보여준것이 떨림을 유발할만큼의 기대였기에 이런 기대치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들쑥날쑥하게 여기저기 상당부분 산재해 있습니다. 다만 아직 활발하게 활동중인 생존하는 지식인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은 한정성을 지닐가능성이 있고 즉 고심고심하며 집필 과정중일수도 있고 그가 풀어냈던 미완의 방법론은 누군가에게 창조적인 영감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방편설법이라는 것은 내용의 본래 핵심은 유지하되 이야기를 하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이야기한다는 의미와 상통합니다.(물론 잘못사용하면 양치기 소년이 될수도...하지만 이야기한 것과 괴리가 아주 크다면 일찌감치 잊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2.김상태비판

김상태라는 저자는 이름이 낯익어 떠올려보니 10년전쯤 국내문학의 외설적인 경향을 비판했던 SEX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이란 책을 쓴사람과 동일인입니다. 해체시와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인 당시 문학판의 작품들을 비판한 것이고 나름대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본문 내용은 현재 기억이 거의없어 다시한번 찾아서 읽어봐야할듯...이책의 기억을 단편적으로 더듬으면 다양성이라는 주제하에 문학사적 흐름을 관통하는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망되는 느낌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김상태 자신이 문학에 깊이 경도된 평론이나 작품이랄수 있는것이 공식적으로 없었고 즉 창작자의 입장에서 가질수 있는 특수한 여건이나 맥락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무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부분은 독특한 혹은 새로운 관점이라는 점에서 미덕을 지닐수 있으나 지속성을 가지지 않은 이런식의 비판은 새로울지 모르지만 결국 이방인이 알려준 한가지 일깨움이라는 한정성을 지니게됩니다. 이 한정성의 틀안에서의 논의라면 아주 적실한 부분이 존재하지만 비판의 한정성을 넘어서는 부분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라.. 이런 입체적인 조망속에서 본다면 점점 제기했던 비판들은 본래의 적실함을 잃어버리고 묻혀지나가게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수학자라는 특이한 타이틀때문이었을지도..당시에 득세한 것은 문화론이었는데 인문학의 영역이 넓어지는 동시에 옅어지는 즉 흥미와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에서는 끌리지만 사회적 축적으로 체득된 것들이 아닌 즉 날것으로서의 생생함이 떨어지고 전문적인 영역이 아닌 각자의 고유한 영역이 있던 학자들이 곁다리로 껴들은듯한 분위기속에서 결과적으로 종지부없이 왠지 겉도는듯한 동시에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문화론이 득세하기도 하던때로 기억합니다. 이런 트렌드속에서 읽었던 기억...

이 독서가 궁극적으로 가져다준 느낌의 총평을 줄여말하면 일리는 있지만 뭐하러 이렇게까지... 더구나 저자의 말을 참고하면 장시간 관심있게 지켜본것이 아닌 한순간의 집중으로 대부분의 저술을 출간당시의 맥락과 가져다준 영향력은 어느정도 생략된 형태의 독서라는 한계임에도...쪼다라는 조롱까지 하면서..

도올 김용옥 비판 - 4점
김상태 지음/옛오늘

우선 우리사회에서 단순히 지식인이란 존재로 추앙받는 사회가 아니라는점.. 비교의 전범으로 삼은 황우석과 다르다는점 황우석 신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혹은 국제적인 미래부가가치와 위상이라는 결과적으로 허상의 비전 혹은 광적이다싶을 정도의 높은 기대치가 있었다면 김용옥은 이와 많이 다른 개개인의 자발적 수용과 수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선택폭이 존재한다는점에 있습니다. 황우석의 경우는 PD수첩에서 보도할무렵에도 해당 프로그램의 존폐가 달릴정도로 진실유무를 떠나 심정적으로 믿지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김용옥의 경우는 특이하다는 정도로 이름정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고(90년대 말인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TV에서 처음으로 봤을때 스님이 특이하고 재미있고 박식하다며...) TV강연을 보면서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이미지보다 이력을 보면 대단해뵈는데 나름대로 애쓴다는 이야기 혹은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줄여서 이야기하면 박식해 보이는 사람이 디테일한 것은 잘모르고 관심도 거의없던 어려운 분야에 대해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설명해줘 고맙다는 반응이 가장 대중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김용옥이라는 공인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적 능력이나 기타  학문적으로 추구하는것에 관한 것이라면 이책의 저자가 할수있는 비판은 일정한 한계가 있고... 노자철학이것이다 였던가 김용옥은 자기를 씹어댈수록 자신이 원하는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더 위대하게 포장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예측을 공고히할 가능성이 농후하기도한데 개인적으로는 김용옥이 지적으로 풀어놓은 것들에 가졌던 환상이나 기대 혹은 설레임들은 물리적인 시간속에서 대부분 자연스럽게 용해된 상태. 이러한 수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김용옥에게서 얻은것은 그가 보여준 몇몇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언설이나 행동이 있기는 하지만 이로인해 그의 장점까지 싸잡아 이야기하는 것도 역시 한계가..(부정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정치적 득실이나 개인적 부나 명예만을 쫓았다고 생각하기에도 어떤부분은 석연치 않고...우리사회의 어떤부분은 기득권 계층인 종교계와 박터지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순수한 열정같은것이 보이기도...)

3. 다시 김용옥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김용옥의 가장 큰 장점은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되 자신이 가진 전문적 영역도 아우르고 나름대로 끌고가며 이해시켜준 부분에 있기도 합니다. 20대 초반 거의 나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던 그의 저술인 나는 불교를 이렇게본다를 읽었을때(개인적인 주관을 모두 와해시키고 정반대의 목소리를 설득력있게 풀어냈을때 받았던 충격과 당혹감.. 군복무시절인 당시 몰래 숨겨가면서 - 1991년 이던가.. 당시에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금서였을만큼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이책을 용감하게 반입전 검열이 존재하던 전방에서 읽을수 있던건 구입당시에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야기하던 저술이라 생각지않고 귀대전 바로 서점에서 구입했기도 햇습니다. 당시에 같이 들고갔던 르 클레지오의 소설들을 들춰보던 검열관이 좋은책본다며 나머지는 그냥 통과..- 읽었건만 읽고난뒤에 패대기치기도..) 지금 돌이켜보면 김용옥의 에너지가 아직 가득할때 열정적으로 풀어낸 저술이라 그런부분도 있지만 당시 개인적으로 고매함과 몽매함을 오가던 시절에 핵분열을 일으키기도....

http://user.chol.com/~tienti/911.htm

김용옥의 또다른 장점은 고전과 현재의 절묘한 사이와 유사성을 래디컬하고 적극적이며 본래의 논지를 지키면서 복잡한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읽을 사람들을 고려해서...) 표현한다는점(중용의 미덕)에 있습니다.
찬성과 반대 혹은 다른 의미의 접점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몫이며 적극적인 표현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책임감은 그에 걸맞는 층위에서 적절하게 평가될때 적합한 이야기들이 도출될것으로 보여집니다.(결과적으로 그의 공적인 평가는 학자라는 큰틀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지요...이런점에서 김상태의 비판중에 고전번역에 대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나머지 부분은 유효한 비판이라기엔 미진한 주관성 혹은 사적이라는 생각이 더 깊게들기도 합니다.)

4. 김상태 비판

그가 크게 제기한 김용옥이 약속했던 사상초유의 기대감을 가지게한 엄밀한 원전의 번역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정도로 유효하고 보고싶기도 합니다.
저자가 느꼈던 기대감과 배신감의 롤러코스터는 개인적으로도 공감이가는 부분이 일정부분 있기도합니다.

다만 지금보다 건설적인 비판을 위해 이전의 김용옥에 관한 비평서들이 한순간의 작업으로 종결되었다면 지속성을 가지고(묘사한것처럼 그렇게 경악스럽고 혐오스럽다면)해당분야의 전문적인 학자들과 함께 진위를 판별하고 까발리고 진실을 파헤치는데 더 설득력을 가지고 후속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비판작업의 필요성을 극대화시키면서 사회적인 시너지 작용까지 고려하면서...

5. 부기

김상태의 저술을 읽으면서 오랫만에 김용옥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도...
90년도부터 한10여년 정도 열심히 읽은 저자 가운데 한명인 김용옥.. 지금 그의 저술들은 나오자마자 읽던 당시의 밀도와는 거리는 있지만(한동안 책과 멀리떨어져 살기도 했기에..)
철학의 비전문가가 접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전언들은 본질적인 부분을 되새겨보게하는
래디컬함이 남아있습니다.
더구나 인문학과 점점 거리를 두게되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대중과의 매개자로서의 능력도 높이평가할만 합니다. 그 이상의 학자로서의 능력은 전문가들의 비판과 겸해질때 유효하고 논의 자체가 의미가 있어집니다.
다만 원론적인 부분을 떠난 어떤 부분은(특히 정치) 그의 진심을 떠나 현실적인 영향력을 고려하면 인기성 발언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기도...

저번주에 조금쓰다 오늘정리하고 글작성후에 검색을 해봤더니...
대체로 비슷하게 생각하는 전공자의 읽어볼만한 글(역시나.. 훨씬 정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Http://www.mediamob.co.kr/umberto/Blog.aspx?ID=177083
Http://www.mediamob.co.kr/umberto/Blog.aspx?ID=177091

부록:
Http://www.mediamob.co.kr/umberto/Blog.aspx?ID=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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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과 리처드기어의 만남..

도서관환상/인문학
불교는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방대한 양의 문자에 갇혀지게 됩니다.흔히 이를 격의불교라 하는데 동아시아에서 불교수용의 가장 큰 특징가운데 하나는 한자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그러하겠지만 불교의 정점은 실천적인 수행에 있습니다. 싯달타의 고행이나 중국의 선불교나 우리의 선불교는 모두 수행에 바탕을둔 것에 상당한 가중치를 부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 중국의 무협시리즈나 우리의 사극에 묘사된 스님들은 모두 이에따른 신비한 능력의 보유자로 각인시키기도 했습니다.

들은바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불교나 유교의 수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깊이있게 수용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전은 영어나 외국어로 깊이있게 번역된지 오래되었고...조금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리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가서 구약의 족보를 달달외우며 자기집 뒷동산 이야기하듯 이스라엘의 지명을 대가면서 성서를 논하는것이 아마 기독교를 믿는 분이라면 국내에서 하등 이상하지 않을것 같지만 서양에서 서양인이 그모습을 본다면 상당히 희안해 보일수 있습니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기독교의 수용이 상당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기에 비슷한 용모의 한국인이 그러는 것은 기이하게 보여질수도 있습니다. 즉 한국의 기독교도가 성서를 이해하는 만큼 그들중에도 불교나 유교에 대한 이해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반대로 벽안의 서양인이 한국불교를 논한다거나 유교의 경전을 가지고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한다면 일차적으로는 기이하게 보일수 밖에 없습니다. 즉 상당한 호기심을 유발할수 있습니다.

이번 현각스님과 리처드기어의 대담은 내일(13일) 불교TV를 통해 방영된다고 합니다.


현각스님의 모습을 보니 스승인 숭산스님이 생각납니다. 그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것은 김용옥의 나는 불교를 이렇게본다에 묘사된 모습이었습니다.숭산스님은 당대 최고의 수행승으로 학문적 성취와 더불어 수도승으로 유명했던 성철스님과 다른점은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는 수행자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영어한마디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포교를 떠난 그를 무모하다 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으로 구애받음이 없는 자연인에 가까웠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숭산스님의 일화 하나
숭산스님은 버클리등 미국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곳에 분원을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5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포교(이 사람은 만물박사처럼 상당한 박식함과 넉넉한 형편으로 인해 상당히 안하무인격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디가나 종교를 권유하는 사람은 귀찮은듯.. 숭산스님은 이사람에게 너는 무지하게 똑똑하니 니가 확실하다는 것만 대답하라며 진행한 대화...

하나 더하기 둘은 몇이냐..
묵묵부답..
왜 말은 안하느냐?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대답해보거라!
삼이요..
확실하냐..
장난하세요?..
그럼 니가 내게 물어보거라..하나 더하기 둘은 몇이냐고..
몇입니까?
0이다..
제가 박사학위가 5개나 되지만 그런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듣습니다.
그러니까 니가 나보다 모르는것이야
사과 1개가 있어 먹었어.. 누군가 2개 더주었는데 그것도 먹었어 그러니 0이지..

이 일화에서 중요한것은 저런식의 말장난 자체가 아니라 안하무인격의 이방인들을 이끌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의 논법은 언어의 언어를 이야기한 현대 언어학의 성과들이나 주관의 한계를 이야기했던 비트겐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 경지를 따진다면 숭산스님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마저 무슨 소용이 있을지...) 그의 이런식의 언어들은 그들에게는 생경한 동시에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현각스님도 그가 포교할때 들어온 제자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극과극은 통한다는 이야기는 진실함을 상당히 가진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게 상아탑속의 학문의 진리이든 생활의 달인류가 지니는 경지든... 그가 지닌 진실함과 성실함 그리고 그에 따라 나오는 행위...

숭산스님은 1927년생으로 공주 마곡사에서 20세때 불교에 입문한이후 미국,중국,일본,유럽 특히 그당시에 공산권 국가였던 소련이나 동구권에도 포교를 했습니다. 숭산스님이 이야기한 일본과 한국의 선수행이 가지는 차이점은 일본의 선은 지나치게 엘리트위주 즉 사무라이등의 지배계층을 위한 면이 존재하고 한국의 선은 생활속에서 찾는다는 점이 가장큰 다른점이라고 했습니다. 이책은 입적하기 전에 나온것이라 나오지는 않지만 2004년 입적하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숭산행원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분명히 깨닫고 자기가 하여야 할일을 알면 그 사람이 도인이요,철인이다라는 말입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청산유수.. 한자로 쓰면 그렇게 나오겠네요..)
이책은 1993년 불교영상회보사에서 초판이 출간되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것은 1994년에 나온 3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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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번째 글을 작성하면서... 백남준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어제 PD수첩을 보면서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허탈함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술작품으로서의 함량미달이나 표절로 인한 사기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그럴듯한 겉포장을 이용한 사회적인 사기혐의라는 점에서 요즘 불거지는 지겨운 학력위조 퍼레이드와 더불어 열대야를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PD수첩에서 백남준 이야기를 보게 될줄이야...)

전위 예술이 가지는 의미는 세계에 대한 발상의 전복을 통한 새로운 전언들을 줌으로써 궁극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함이 하나의 목표이기도 합니다.이말의 다른 이면에는 전위예술의 모방을 통한 아류(에피고넨)는 자기만족속에 갇히게 되어있습니다. 몇년전 인사동 화랑을 돌아다니면서 의미도 와닿지 않고 장인적 기교도 떨어지는 일부 작품들에 아내와 같이 눈버렸다면서 서둘러 나오던 것들이 생각납니다.백남준의 작품은 많은 경험과 맥락속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에 습작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단순한 형식의 모방은 처치곤란한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생각합니다.(피카소는 장난같은 작품에 딴지걸던 사람들에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똑같이 모사해서 일축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백남준의 행위예술은 이전의 예술이 가졌던 태도에 대한 자유를 상징하는 위반의 의미로서 메시지이지 예술형식으로서의 중요성은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나 작품의 의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적게 잡을수도 있습니다. 물론 서로 상관관계로서의 형식과 의미의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비판의 배면에는 그의 작품을 형식만 비슷하게 모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의미로서의 이야기입니다.)

백남준이 한국에 왔을때 김용옥과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말하면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백남준은 해외로 가기전에 마르크스에 많은 영향을 받아다는것이나(당시에는 공부좀 했다는 사람은 전부 그랬다고 합니다) 한글보다 한자를 더 중시했으며 - 김용옥은 동양인들의 영원한 비디오아트는 한자가 아닐가라는 생각을 이야기 합니다.- 백남준의 최초의 TV는 달이라는 이야기까지 창조성이 넘치는데다 아주 박식했다고 합니다. 백남준은 흔히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읽었음직한 동양의 고전에 대한 소양을 교육받으며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백남준은 스스로를 2류나 3류 아티스트라고 겸손해 했지만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는 원조성을 지니고있고(장난같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도하겠다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최초의 신시사이저를 만들기까지 9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작품으로 MIT에서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시간이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예술가에게 장인적 기교는 미덕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그가 속했던 그룹인 플럭서스의 작품들은 관객입장에서 보면 골탕 먹이는(그의 스승이라 할수있는 존케이지는 피아노앞에 앉아서 가만히 있다 내려와서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그사이에 새도 지저귀고 어쩌고 저쩌고 한다던가 과격하게 작품을 부수는 행위등 백남준이 가장 중시한것중에 하나는 관객과의 소통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집합같은 극단성을 지녔지만 그로인해 관객과 교감을 할수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백남준의 일본인 아내인 시게코구보다씨는 14년동안 백남준을 쫓아다닌후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플룩수스의 정신에 대해 " 자유를 위한 자유이며 자기를 위한 위반이다"
컴퓨터 시대의 예술의 효용성 - 폭력적 결과를 수반하지않는 소비행위
(카니발이나 전쟁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한 해석위에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이 인터뷰는 9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것이라 현재와 같은 인터넷 환경이 있기 이전의 이야기 입니다. 컴퓨터 무용론을 펼쳤습니다. 이유는 부질없이 컴퓨터 앞에서 게임등으로 시간낭비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인터뷰를 보면 아주 솔직한 모습이 감명을 줍니다. 지금 현재 예술하는 이유는 돈을벌기 위해서.. 새로운 비디오 기술을 접목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인격이란 남을 해치지만 않으면 된다 도덕적 잣대같은 것은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다.(예술 자체와 예술가는 특히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는 약간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백남준은 그리 부유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방세와 밥값 작품을 만들수있는 돈만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플룩수스 멤버들은 백남준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멤버중에는 후일 대통령이 되는 사람도 나옵니다.)

김용옥 선생과 인터뷰를 보면 상당한 박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이야기 이세상 모든 아티스트들은  야비한 구석이 많은놈들이란 것을 명심해라...현대사회 최고의 독재자는 TV..자신의 지식원은 신문이지만 신문은 그나라의 문화수준을 대변한다.. 우리나라 신문은 온통 정치이야기로 뒤덮여있고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만(무책임하다는 질책이기도 합니다) 가득하다.. 서양의 신문은 70%가 스페샬리스트를 위한 기사다..정치에 관심두기보다 수학,철학,과학,역사에 더 관심을두라...한국은 애국자가 너무 많아서 뭔 얘기하기가 힘들다(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이야기 하는듯)...예술은 텃세다,보편성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단편적으로 흡수할 내용들이 아니고 맥락이 더 중요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하단의 책을 보십시오.)

* 위에 나온 일화들은 '백남준과 그의예술[김홍희,1992년,디자인하우스]' '석도화론[김용옥,1992년,통나무]' 에서 읽은 내용들입니다.

백남준 스튜디오
백남준 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
비디오 광시곡 웹사이트


현재 KBS에서 전시중인 비디오 광시곡에 대한 해설


백남준 참여TV



백남준 1주기 기념전 부퍼탈의 추억 홍보영상


백남준의 생전모습



백남준 쇼광고



백남준 이야기를 조금 장황하게 한이유는 요즘 나오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블로깅을 하면서 이전보다 많이 접하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전의 기억들을 자극하게 되는데 원래 다루려던 것들은 한동안 블로그 스피어를 달구었던 종교와 영화에 관한 책을 소개할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개인적으로 과거와 교감하는 현재의 의미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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