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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 김다솜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경기 영상 보기 - 4월24일

스포츠/스포츠일반
국내 최초 여배우 복서이자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시영
얼굴이 재산이랄수있는 여배우인데다 복싱 선수로 나선것도 어려운일이지만 국가대표까지..
30대에 들어선 나이까지 감안하면 불가사의...

국제대회에서는 어떤 경기를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이시영은 국가대표선발전 결승전에서 김다솜에 22-20으로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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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판정패 - 2013 복싱 국가대표 1차선발전 결승전 경기 동영상 다시보기

스포츠/스포츠일반
이시영 결승전에서 판정패하며 국가대표 선발 좌절

기량과 체력 작전 모두에서 열세였던 결승전 경기
상대선수인 박초롱 리치가긴 이시영에게 거리를 주지않으며 더불어 체력과 기량도 더뛰어나 보였던 경기
하지만 이시영으로선 최선을 다했고 아름다운 도전의 대미를 장식..
여배우 이미지도 망가질수 있었고 삼십대에 들어선 나이로 취미를 넘어서 실전으로 뛰기에는 힘든 경기
상대했던 선수들이 띠동갑에 가까운 여고생들이었던 것도 재미있는 사실..

이시영이 보여준 건강한 도전정신은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본인에거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가져다줄것으로 생각됨..


결승전 경기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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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 [스포츠/스포츠일반] - 이시영 결승진출 - 복싱국가대표 1차선발전 준결승전 동영상

2012/07/06 - [스포츠/스포츠일반] - 이시영 복싱 동영상 - 서울시 대표 선발전 준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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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철 복싱 런던올림픽 16강전 경기 동영상 다시보기

스포츠/스포츠일반

예전에 복싱은 메달이 너무 많이 나와 정신이 없던경기..

세월이 변해 지금은 동시에 여러명씩 있던 프로복싱 챔피언도 없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끝날무렵..

복싱 무더기 금메달 7체급 석권.. 당시 북한과 아슬아슬 4위 경쟁중이었는데 10여개 차이로 벌어지는데 가장 크게 공헌..

중국의 등장으로 아시아 체육강국은 일본에서 중국(당시에는 중공)으로 넘어갔고..

1986년 이후엔 한국이 2인자로 올라서며 일본과 자리바꿈.. 아시안게임에선 이후 몇번 엎치락뒤치락 한것으로 기억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보이기도 했는데.. 복싱은 90년대 들어서면서 급락하기 시작..


런던올림픽에는 라이트플라이급 세계랭킹 1위 신종훈과 라이트급 한순철 선수 출전..

한순철 선수는 29살로 마지막 올림픽이 될듯.. 베이징올림픽에선 체중조절 실패로 16강전에서 탈락..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던 경험이 있는만큼 관록이 보이는  선수..


경기는 막상막하.. 체점도 동점으로 나왔는데 심판판정으로 승리..


한순철 복싱 16강전  - 한순철 : 바즈겐 사파란츠


한순철 8강전 상대인 가이브나자로프의 16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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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복싱 동영상 - 서울시 대표 선발전 준결승전

스포츠/스포츠일반
요즘은 예전처럼 잘하지않는 복싱..
이시영이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으로 운동을하며 경기에 나서면서 도전정신에 많은 박수를 보내기도..
저변이 넓은것은 아니지만 어릴때부터 하던것도아니고 전적으로 운동만 하는것이 아니고 운동선수로 서른넘긴 나이면
어느정도 타고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결승까지 오른것도 대단하지만 역시 도전정신에 많은 박수..


7일 결승전을 치르고 우승하면 전국체전에 나갈수도...


네이버 프로필 수상내역에 복싱관련 내용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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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로 잼을 만들어보다..

사람과사람/그냥 생각나는 것들
저번에 그림주고 받았던 유기농 귤들이 허연 당분들을 드러내더니 몇몇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박스는 이곳저곳 나눠주고 한박스를 먹고 있었는데 이런이런...
안되겠다 싶어 남아있던것중에 3분에2 정도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올해 두번째로 잼을 만들었습니다.
먼저번에도 귤로 잼을 만들었었는데 그당시의 잼은 상당히 신맛이 많이 났습니다.
물론 설탕을 많이 넣었음에도....

어릴때 어머니는 오이나 당근으로도 잼을 만들어주곤 했었습니다. 이녀석을 크래커에 발라먹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시절 학교에 이걸 가져갔다가 무슨 오이로 잼을 만드냐며 놀려대는 친한 친구때문에 다시는 들고가지 않았었습니다.
아! 갑자기 이녀석이 생각나는군요.. 조금은 불우한 환경이었던 친구는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아에 가까웠는데(뻑하면 가출해서 학교에 안오곤했으니까요..대부분이 지각만해도 큰일나는것처럼 호들갑떨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주번이 학교문앞에 버티고 있었고 이름적는게 왜이리 두려운지 가끔 복장불량이다 혹은 교실돌다 떠들었다면서 이름을 수첩에 적어갈때면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전전긍긍하던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6학년이 되어 주번을 할때는 여동생 교실로 들어가 매일 약올린다면서 혼내주라던 남학생 앞에서 어깨 두들기며 한번 씨익 웃고나왔던 기억도 납니다...박통이 비명에 갔을때에는 TV에서 한동안 만화는 안나오고 이상한 것들만 잔뜩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전두환 시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표어처럼 떠오르는 구절들 청탁배격등등.. 학교에서 지금은 고인이된 이주일 흉내를 꽤냈었지요 한참 잘나갈때 저질이라는 이유로 철퇴를 맞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아현동 외사촌형집에 놀러갔다 런닝중이던 황충재선수를 보고 뒤쫓아가면서 흥분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복싱은 지금의 효도르나 최홍만 혹은 레미 본야스키정도의 선수들도 왠지 왜소해(?) 보일 정도의 엄청난 국민적 열기였습니다.(K-1이 케이블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면 당시의 복싱은 공중파에서 실시간 위성중계 혹은 많은 주목속에 녹화방송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과는 물론 미디어의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관심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헤글러, 레너드, 헌즈, 두란 부터 개인적으로 기억에 제일 강하게 남은 김상현과 경기하던 아론프라이어.. 대단원을 마무리한 타이슨의 등장까지

830402 Aaron Pryor vs. Kim Sang-Hyun


- 아론프라이어와 김상현의 눈싸움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3년이면 중학생시절이네요. 기억이란 참으로 믿을만한것이 못되는군요.. 제기억에 아론프라이어는 김상현의 허리를 살짝 넘는 키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영상보다 더 짧았었고.. TV로 봤기 때문에 이영상보다 디테일과 분위기가 더 강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기억에 김상현 선수는 챔피언을 이전에 지냈었고 재도전이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은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막을 보니 한살차이네요. 키는 김상현이 큰데 리치와 몸무게는 아론프라이어가 더많이 나가네요. 어릴때 기억으로는 무쇠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봐도 여전하네요 흡사 동물원에서 봤던 검은색 퓨마와 같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하던.. 과천에서 촬영한게 있을텐데 찾아봐야겠네요... 당시의 대부분 전문가들도 김상현이 이기리라는 예상보다 아론프라이어와 경기한다는점에 초점을 맞췄었고 적지인지라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제기량을 발휘했어도 승리까지 예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미국에만가면 맥을 못추던 우리나라 복서들이었습니다. 김상현도 우리나라 복싱 전성기를 장식했던 챔피언가운데 한명인데 아론프라이어는 복싱사에서 주요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워낙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

아론프라이어 대 토머스헌즈 (아마추어 시절)



이친구에게는 볼펜에다 비닐을 끼워서 풀피리비슷하게 부는법을 배웠는데 한때 교실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4학년 때부터 졸업할때까지 같은반이었는데 학교에 나온날과 안나온날이 비슷할정도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녀석 덕분에 롤러스케이트타러 다니던 6학년때가 기억납니다. 그당시에 아마 단체로 몰려가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겨울철마다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덕분인지 별도로 배울 필요도 없었는데 처음에는 꽈당꽈당 넘어지던 친구들 붙잡아주기 바빴었습니다. 이친구는 거의 선수였습니다. 갖가지 기교를 다부려가면 타던 기억이 납니다. 후일 중학생 시절에 길거리에서 그리고 롤러장에서 한두번 마주치기는 했었는데 지금은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들리는 소문에는 학교를 그만뒀다던 이야기도 들었었고.. 이친구에게 받았던 선물중에서 동그란 아크릴판에 글자를 새겨넣은 명찰이 있었습니다. 보통 반에 부유한집아이 한두명 아니면 전체적으로는 몇몇 반장이나 부반장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티를 내가며 차고다니던 것이었고 대부분은 학교앞 문구점에서 파는 비닐로 만든것었지요.. 이 친구 삼촌이 이런일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어느날 내게 하나 만들어준다했는데 몇일뒤에 건네 주더군요..아마 기억에 한동안은 약간 뻐기기도하면서 잘차고 다니다 부러졌었던가 아니면 옷핀이 고정된 곳이 떨어져 나갔던가 해서 없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았기에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성격도 상당히 내성적이긴 했는데 나름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이야기 하다보면 동급생들을 한수아래로 보기도 했었습니다. 저랑은 같이 도시락까먹던 친구였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제 뒷자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6학년때는 혈기왕성한 젊은 담임선생님에게 진짜 비오는날 먼지나도록 맞던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아마 한달만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온날인걸로 기억합니다.(까마득하게 잊고있던 것들인데 당시 유행하던 줄줄이 사탕처럼 추억이 꼬리를 물고 나오네요)당싱의 이친구 어머니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친구는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생활고에 찌들었지만 그래도 자식이랑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던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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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어시간 끓였더니 모두 쫄았습니다. 일부러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 아주 잘했네요..

귤이 20여개 가까이 들어갔는데 이 조그만 통에 들어가고 조금 남았습니다.

보내주신 분이 유기농 재배한것이라고 했는데 크기 분류가 전혀 안되어있어 갓난 아이 주먹만한 것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 어른주먹만한 것까지 전혀 개념없이 뒤섞여있고 화장기 없는 쌩얼의 겉모습들은 시골아낙네같은 모습입니다.

어제는 귤차도 끓여먹었는데 반응은 시큰둥....원래 무미건조한 맛으로 먹는거야 그랬지만... 샛노란 색깔만 먹음직스러워 그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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