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betterface


노래제목처럼 10년전 일기를 꺼내어보다...

사람과사람/운명적인 만남

비가와서 그런지..
아마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비가오면 야외활동을 안하기에 신날수도 있고 근무나 기타 훈련상황 아니면 휴일이거나하면 짜증이 엄청 증폭될수도 있겠네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무래도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어집니다.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하거나 비슷한 여건에 처하기 전에는...
그래도 가정생활은 그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결혼을하고 아이가 있으면 말안해도 잘아실겁니다.
이 일기를 꺼내보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사람 같습니다.
예전에 다락에서 아주 조심스레 쌓여진 것을 아주 조심스레 뜯어서 보던 20대초반에 쓰여진것들은 말도안되는 과장에 엄청나게 깔깔거리며 읽었는데 CD정리하다 발견한 10년전에 쓰여진 이것들은 지나치게 진지하네요.

             
 헤테로토피아의 단상

                                              - 김종휘

 1997.7.5

 이미지에 한껏 헛배부른 시간들이 손을 흔든다. 분명 생각과 생각의 틈바구니에는 몽상과 망상이 공존했다.

 1997.7.6.

 너무 쉽게 허무란 말과 만난다. 문득 이게 습관성이 아닐까 자문 해본다.
 칙칙한 장마, 캄보디아 내전,
 허무란 말은 내뱉자마자 이 도시에선 쉽게 비웃음과 만나고 늘어선 가로등이 비꼬는 지루한 시간들이 이어진다.
 
 1997.7.7.

 바닥에서 박박 기리라, 무색을 꿈꾸는 먼지여
 계속 돌아볼지어다, 그대의 문제는 언제나 꼭대기에 걸린 잡동사니들의 난장판 이었음을
 의심의 노래가 곳곳에서 돌아오고 있다. 당도한 바람이 그대를 내동댕이 치지 않음은 안스러움이 아니지. 동정도 아니야. 그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
 다만 그대의 머리카락을 한 쪽으로 휩쓸 뿐이지. 그대는 그 편협이 몰고온 서자.

  1997.7.10.

 계속 후덥지근, 무질서가 부른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이 범람한다. 무작정 버려진 쓸만한 물건들. 추억의 설경 속으로 난바다를 떠도는 쓰레기. 친구는 부질없을지도 모르는 연인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흩어지고 또 만나는 사람과 사람.
 참새 한 마리 방안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나갔다. 바뀐 전화번호만 적혀있는 수첩 속으로 부재중인 그들에게 계속 신호를 보낸다. 어둠은 성급하지 않다. 동이 트기 까지 가위 눌린 활력으로 지샐지어다. 밋밋한 어둠의 무늬들은 그대를 쉽사리 부풀리고 오그릴 것이다. 하여, 부패한  作爲의 숲은 밀림 속으로 떠밀려 잊혀지면서 우람하게 자라리라. 열기를 식힐지어다.

 어떤 해석, 어떤 징후, 어떤 욕망, 샐쭉한 자아, 밍기적거리는 일상, 어떤 활력, 어떤 빈곤, 씁쓸한 은거, 징그런 모기, 그래도 진행중인 시간.

 시간과 공간의 節合.
 
 늘어지는 정점에서 낙하하는 졸음.
 신발끈을 묶는 클라이머, 후리듯 진지한 줄 던지기, 붙박힌 눈동자, 가장 완벽해야할 하강.
 엇박으로 엮이는 삶의 리듬. 그 속은 항상 거뭏한 빛.
 
 깜빡이는 노을 속으로 검은소 심호흡한다, 숨결따라 숨결따라 걸어가는 사람.
 열려진 하늘문, 黑雲이 몰려온다.  
 
 1997.7.11.

 푸름과 노을이 구름을 분할했다. 아니 이루어지기 힘든 공존을 하는 하늘이었다. 비를 부르는 바람이 서서히 소나기를 뿌리고, 더위가 산뜻하게 물러간 듯하다. 가만히 귀 기울일 틈 없이 동네는 장엄한 협주곡을 연주하고, 창문을 싸락싸락 나주손이 동티난 마음을 달래어준다.
 이런 밤이면 동 끼호떼처럼 곱게 미친 늙은이와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으리.

 1997.7.12.

 집착: 가능하면 버려라. 쉽게 성글고 어렵게 흩어진다.
 
 그늘을 배회하는 떠돌이 개, 가벼운 걸음으로 볕을 피하더니 피멍든 뱃가죽을 핥는다. 늘어진 시간이 오종종 볕을 거두었다.
 
 무서운 여름, 피식 쓰러지는 쓰레기통, 아이들이 깔깔대고, 하얀돌 던지는 어둠.

 비를 거두어 창문을 두들기는 바람. 틈엔 칼날 자국을 내고 강물 속으로 투신하며 몸을 불린다.
 
 정신이 너무 멀쩡하다. 곱게 미치길 포기했지만, 바람 한 점 거두어 때가 오면 날릴지어다.

  1997.7.16.

 노래에 취해 이 곳까지 왔지요. 펄럭이는 시간이 현재와 손잡고 뒤돌아봅니다. 가능하면 계속 취해도 좋겠지요?
 어물렵, 환상과 진술이 엇갈려 불협화음.
 
 슬며시 진행중인 시큼한 용암처럼 파도와 대작하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긴장의 이완, 상상 임신처럼 배부른 바람 속을 건너는.

 부대끼는 無를 꿈꾸는 절망의 부질없음. 삐죽삐죽 새나가는 부담을 이겨내려 취중망언을 중언부언 견강부회,
 나는 지금 없는 대상 때문에 지껄인다. 상대 없는 싸움은 꾸물꾸물 엮이는 지루한 뻐쩡댐.

 표현, 이미지, 삶의 무작위적 반복.
 
1997.7.17.

 경계 바깥에는 자유롭게 열린 카오스가 있을 것이다. 매혹과 연계되었지만 몸적인 충격과 예측불허의 두려움이 증폭, 묵시록적 종말이 지니는 겸허와 몰이해의 양극단.
 경계와 경계에 끼인 자는 구도자적 자세를 지니고 있다. 열린 가능성은 예민한 신경을 지니게 해주지만 급하게 소모하는 몸과 정신.
 경계 안에는 안락함이 있다. 하지만 안락을 취하기 위해선 아귀다툼에 익숙해야한다. 그래도 경계 안은 떠도는 자에게 최소의 물리적 공간을 마련해준다.

 열린 가능성은 피비린내를 봉쇄할 수 있을 때 가치를 얻는다. 거대 담론의 환상적인 요소들이 지워지려면 깨어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거대 담론을 필요한 위치에 거주시키기. 비교하는 방법이 지니는 장점은 균형감각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비교에 탐닉하면 제자리 뜀뛰는 고만고만한 군상들의 아귀다툼이 일어난다.

 적절한 우주.
 상대론이 지니는 미덕을 살리기 위해선 꼼꼼한 추찰이 필요하다.
 증폭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적절한 대응은 밧줄로 몸을 묶은 오딧세이적 지혜.
  1997.7.22.

 깊은 상처 입은 것처럼 말짱한 나날이 빨리 지나간다. 상식에 식상한 놈이라고 중얼거리던 광기는 사라졌지만 그 끝을 부여잡은 조각조각들이 몸 구석구석을 찌른다. 일상은 복잡한 폼을 잡는 단순함을 배우면 그럭저럭 때우는 관대함과 건드리면 터질 상처 같은 자아를 양옆구리에 달고다닌다. 그래서 독설이 터지면 우물쭈물 망가뜨린다.

 파열하는, 가까스로 진정, 부대끼는, 망가진 여름, 구슬픈 노래.

 시간이 옹이지고, 성글고, 시나브로 사라질 때 붉은 어둠 따라 재된 욕이 튀어나온다. 안개 피어나는 새벽 바위 곁으로 행군하는 쫄병처럼 부르튼 발. 부슬비 이슬비 어둠은 소근소근 별을 내쫓고 달겨드는 잠.

  1997.7.23.

 바람이 제자릴 찾기 위해선 멋드러진 장애물을 만날 것.

  1997.7.30.

 오랫만에 등산을 했다. 군생활의 추억이 서린 경원선 기차를 타고 소요산에서 내렸다. 등산하는 사람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을 빼곤 없었다. 자재암의 탱화는 퇴색이 심해지기 직전의 산수화였고, 나한전의 지장보살은 인상적이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걸 그랬나보다. 의상대 밑에 있는 구절터에 흐르는 계곡물은 너무 차가워 일 분 이상 발을 담글 수 없을 정도였다. 원효가 지었다는 소요산이라는 이름은 장자를 떠올렸지만 날씨 탓인지, 살짝 비가 왔다면 운치가 있었을텐데. 그러나 이도 역시 사념이 이끌어낸 망상일테고.
 산 초입의 노래방이며 여관등등은 가관이다. 수덕사 입구나 설악산 중턱의 술집 보단 그나마 낳지만 온갖 바가지와 엮여진 향락은 도시에서 충분할텐데. 자본의 논리와 욕망의 분출은 시대에 따라 적절한 자율성이 필요하다. 지금은 지나침을 지나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닥치기 전의 반성이 너무 없다는 소리다.

 산은 언제나 겸손을 가르쳐준다. 나한대와 의상대 중간에 있는 이 미터를 조금 넘을 듯한 흰바위에 가까스로 올라가서 내려오다 다칠 뻔했다. 끝까지 쫓아다니던 날벌레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잊어버렸다. 온갖 소리를 내버려두는 산꼭대기.   
  
 1997.8.5.

 패턴 속에는 짜증과 재미가 공존한다.

 저자와 지식인이 죽거나 축소됐다는 서구의 이론에는 건방짐과 불안이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물고있다. 다음 수순은 조롱과 광기의 나열 속에서 커다란 머리만 남은 두 마리 뱀.
 
 변화란 스스로의 속박을 더 큰 속박으로 묶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와해된 속박을 보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기술관료, 즉 테크노그라트의 한계는 계속적으로 만병통치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무서운 희극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물론 대충 때우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더러움을 쉽게 체득한다. 예술은 이 지점에서 자유로운 구속을 부여한다. 물론
같은 더러움은 쉽게 일어나지만 사이를 해치지 않는 망상일 뿐이다.  

  1997.8.7.

 감각의 깊이는 더불어 이루어지는 場의 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닫혀 쇠하는 공간은 대체로 절차가 복잡하다. 어떤 시기로 한정되어야 할 편향된 집중이 딱딱하게 굳어지면 떼어내기 까지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숙이란 그래서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가보다. 역설이 지나치면 희화화된 일상이 전면에 부각된다. 지겨운 잔대가리 싸움이 쇠하게 만드는 공간을 이루어낸다. 삶이란 김현 선생님의 말처럼 더러운 꼴을 다 경험하는 것일까?

 노동에서 노래가 나오지 못함은 행복한 시대가 아님을 반증한다. 구색 갖추기와 개인적 재미를 물과 기름처럼 공존시키는 일상의 일터. 심미적인 것들은 몸과 정신의 불협화음에서 나온 아귀다툼이 돌출한 명분 속에서 공중부양을 꿈꾸게 채근당한다.

 표현은 집중된 바람이다. 굳어 멋드러진 시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인내와 광기의 접점에서 배회하게 만든다. 초월은 왠지 싸가지 없지만 희열을 실어다주기 때문에 중독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푸코의 말처럼 사람을 위로한다. 구마라즙의 고뇌는 재능에 의해 파먹힌 삶이며, 명민함이 몰고온 식자우환의 전형.

 삶은 일정한 법칙을 필요로 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카오스적인 조화를 구할 수 있다. 이런 상대론은 기생성을 지니고 있기에 공생을 위해선 적절한 사이를 구현할 수 있어야한다. 싸움의 시작이며, 윤리의 창출이며, 심미적 지어냄을 묶어내구 있구나.
 
 1997.8.18.

 습관이란?
 다듬으며 구속하는, 대체로 몸처럼 하나로 이루어지는 여러 갈래.

 반성이란?
 애매한 말이지만 적절한 진화를 위해.

 몸의 근기가 흐리멍텅한 오늘 습관처럼 무관심을 거리로 보냈다. 가능하다면 벌을 받을 것같은 모호한 느낌. 흐름을 타고 재독하는 김영민의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는 더더욱 질타한다. 아니 내가 나를 질타하는 습관적인 책읽기. 책읽기를 통해 나는 사라진다. 문득 일어나는 나는 돌이키기 힘든 늪으로 빠진 느낌을 솎아낸다. 까뮈의 ‘결혼/여름’이란 책에 묘사된 알제리의 해변과 그 곳 사람들처럼 서구인의 눈에 비친 이방적 활력에 총을 당기는 뫼르소처럼 가당치 않은 충동이 옹그라니 노려보고 있다. 나르시즘적 질투, 아닐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겨먹는 경우처럼 뻐쩡댐, 시효가 지났다. 구색 갖추기 전쟁을 벌이는 대중 문화와의 불화가 가져온 소외감, 맞긴 하다 그렇지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정도 어긋남은 견딜 수 있다.

 가위눌린 활력이 있다. 빈공간을 점점이 지나간다. 스치긴 스쳤다. 뒷그물을 맞추는 놀라운 속도의 흰공. 잠시 시간이 뒷짐진다. 광대를 들러메고 짜라투스트라는 영혼의 결핵 환자처럼 유유히 몰락의 불덩이를 지폈다. 날벼락이 비를 부르고 섞인 바람이 몸을 적시는 어느날.          

  1997.8.24.

 요재지이를 읽을 때 낄낄거렸던 여러 대목처럼 책상물림적 몽상이 가져오는 나르시즘적 욕망들이 휘발성 물질처럼 날아가고, 맞물린 현실이 몽상을 망상으로 변질시키는 즉 스스로 속박을 부여하면서 생긴 괴로움은 눌변과 어울려 다채로운 망각의 지하묘소로 이끌고 간다. 이문구 선생의 입담과 어울린 만연체나 채만식의 풍자가 결벽증과 소통하는 정결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열정의 방향이 당대와 어울리기 때문이리라. 살아남으며 두루두루 살피는 쇠고집 정신. 

 1997.8.28.

 믿음과 현실의 격차는 어디서 올까?
 오늘 아침에 잽싼 도둑질에 당한 내 모습에서 망연자실한 웃음, 별로 궁해 보이지 않았던 그 여자의 뜀박질하는 뒷모습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흐르던 타성을 일깨운다.
  익명의 여도둑은 실수로 떨어트린 전철 패스를 뒤돌아보는 순간 내게 집어 건네주는줄 알았지만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와 뜀박질의 순간이 겹치면서 우울한 일상을 건네어주었다.

 세르와 톰은 직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줄 타는 사람처럼 현란한 이론이 많은 요구와 질서가 엮여 건너가고 있다.  

  1997.9.11.

 시는 그런 무의미들과 엮여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완전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지루해하면 할수록 떨치기 힘들다. 오히려 적요로운 일상과 더불어 살금살금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솎아진 언어들은 균열과 파괴, 예측불허의 진경들이 머리 속을 난도질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시를 쓰는 날 몸은 날아갈듯 우화의 길을 안내할 것이다.

  1997.9.22.

  밈, 자기 복제하는 유전자. 문화의 형태를 지니는 인간의 생활방식은 장인적 기교를 통한  물질, 즉 氣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物質들이 나름의 자생적인 완전성을 지니는 형태를 말한다고 이해했는데 밈이나 유전자나 맹목적인 자기복제만을 한다고 말한다. 인간만이 이 전제적 지배자를 반역할 수 있다는 의미는 의식적인 선견능력(직관을 말하는 것일까?)이 독자적으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데. 太虛를 논하고 倫理적 세계를 꿈꾸는 新儒學의 거장들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주목할만하다. 카프라를 읽었을 때의 경이감 비슷한 당혹감들이 튀어나온다. 
 
  1997.10.1.

 나츠메 소세키의 [문/ 송현순 역/ 1994/ 밝은 세상]을 읽었다. 무색의 표면 위에 검은선 하나를 그려놓은 듯한 구성에다 점점이 검은선 속으로 들어가는 듯 하더니 다시 제자리걸음하는 소설. 시공간의 차이인지 모르지만 군국주의가 한창 팽창하던 시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음은 방만한 말장난이 될지도 모르겠고, 매력과 죄의식이라는 틀 속에서 노인처럼 살아가는 삼십대의 불륜으로 맺어진 부부의 이야기.

 1997.10.15.

 나는 아직 낙관주의에 머물고 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세 번째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새롭게 해석되는 통찰들이 살아 나오는 문맥 속에서 명료한 헤부적거림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깊이와 직관의 차이와 어울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명료함 즉 분별을 꿈꾸다 매혹을 잃어버리는, 그럼으로 둘 다 잃어버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1997.10.27.
 복거일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1994/ 문학과지성사]와 은희경의 [새의 선물/ 1995/ 문학동네]를 읽었다. 복거일의 단정한 문체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단문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역사의 민활한 동시에 빨리 은폐시키는 속성을 감각의 깊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섬세한 통찰력으로 복원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명을 찾아서’에서 보여준 통찰들이 경험 속에서도 살아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은희경의 잡스러움 속에서 피어나 딴죽거는 일리 있음은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잡스러움은 시대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이라는 점이고 소설의 주인공인 진희가 지닌 성장기의 결손 가정은 잡스러움을 빤히 쳐다보게 하는 아픈 배경이 되어 희비의 쌍곡선을 냉큼 뛰어넘지 않게 만들고 있다. 내 책읽기 경험 가운데 원형처럼 존재하는 카아슨 매켈러즈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여주인공이 벙어리인 싱어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은희경의 소설에선 그 대상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음에 우리의 현대사는 이모양 이었구나로 까지 비약되는 망상.

 박남철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하지 않음이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궁금할 뿐이다. 광기와 엮인 진실이란 압박과 끝없이 싸우게 마련인가 보다. 스스로의 잘못과도 멱살잡고 싸워야하다니, 그의 말대로 그는 시인일 수밖에 없구나 빌어먹게도.
  1997.10.28.

 예비군 훈련장, 예정에 없던 소집, 불편한 교통, 터벅터벅 걸어온 산길, 텅 빈 승합차를 끌고 가는 사람,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소읍을 가득채운 군복들.

 나의 무기력증은 어디에서 오는가?
 눈에 불을 켜고 읽던 지적인 담론들이 모두 생경한 곳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쳐다본다. 아니 텔레비젼이나 시골 동네 풍경도 마찬가지. 몸으로 스며든 체념은 분명 관념의 웅크림이 조장하는 나르시즘적 욕망의 부질없음을 눈치챔에서 오는 것 같은데! 욕하기도 귀찮은 시간의 흐름.
 
 1997.11.27.

 감성을 일깨우는 것들은 결국 일상이다.
 
 가벼움이 너무 횡횡한다. 진지한 가벼움은 代價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몸적인 예측불허를 즐길 뿐. 결국엔 귀소하는 공간만이 남을 것이다.
 
 1997.12.2.

 시간의 흐름은 삶을 한 방향으로 몰거나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킨다. 분별의 상실은 혼돈의 와중에서 극단으로 몰고 가는 성향을 가중시킨다. 이 지점에서 매혹은 굵직함과 가냘픔을 설정하고 그 중간에서 배회하게 만든다. 그 간극이 넓어질수록 예민한 신경을 지니게 한다. 쓸모 없는 생각들이 실시간에서 행동하게 되어지면서 절충을 배우게 되고 더러운 타협이 빈번해진다. 이 지점에서 급변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지난날의 궤적, 즉 역사라는 이름 아래에서의 급변이나 혁명은 그 이상들이 단명함을 당연하다는 듯 지속적이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었다. 가령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 같은 인물을 도처에서 쉽게 발견하게 되면서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상을 엿보게 되는 현실이 닥쳐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의 자기추스림을 할줄 모르면서 입바른 소리만 해댄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변절에 너무 익숙한 시간대에 살고 있다. 
 문명의 작위성. 도킨스의 말처럼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까마득한 조상의 것까지 지닌 녀석이 선천적인 예견능력을 발견하고 제대로 펼쳐질 수 있는 장이 형성되기까지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적절한 자기제어 방법은? 

  1998.4.8.

 삶이란 후즐근한 견딤이란 생각이 든다. 라오서는 아주 매력적인 작가란 점을 루어투어 시앙쯔를 재독하면서 느꼈다. 무덤덤한 듯한 표정 뒤에 숨긴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스며들어있는 시선을 자연스레 보내고 있다.  시앙쯔는 내성적이지만 자존심이 쎈 고집쟁이면서 동시에 주어진 일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이기적일 수밖에 없도록 성장환경을 가진 평범한 하층민이다.  이 촌뜨기 시앙쯔가 대도시 페이킹에서 겪는 일상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건 경제적인 제자리걸음과 여러 사람에게 당하기만 하는 자괴감을 맛보았을 뿐이다. 결국 시앙쯔는 불한당이 되어 정치판의 혁명꾼을 팔아넘기거나 그럭저럭 손쉬운 일만 찾아 하루하루를 넘기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나고 있다.
 미국에선 이 소설이 해피앤딩으로  번역되어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왕룽의 성공처럼 미국적인 특성의 하나.
 
 1998. 4. 14.

 내 이십대 초반을 저울질하던 시인인 이성복. 무모한 열정과 치기들이 혼종된 공간에서 낄낄대는 버릇을 키우고 있을 때, 아직껏 벗어나지 못한 유아기의 버릇 같은 흔적들이 지금여기의 나를 마구 흔드는 비릿한 시간.

 이성복의 시는 나의 둔한 머리가 아는 것들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론 현재까지.
 초현실적인 것들에 집중하면 그의 가난이 몰고 온 듯한 날카로운 현실이 버틴 채 서정적인 공간으로 달아나고, 그 서정의 흐름에 기대면 그는 집채만한 화면에 역사적 비의들을 틀어대며 그 현란한 빛들만 감상할 수 있는 측면으로 나를 몰고 갔다. 그렇게 즐겁게 후려진 나는 햇살이 따가운 철책의 막사에 기대 그의 밤을 읽어대고 있었다. 뒤돌아봄이 주는 씁쓸함이여, 나는 그로인해 쉽게 늙을 수 있었으니 이 때이른 축복 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는 것이었다.

  1998.4.19.

 요 며칠을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과 더불어 보냈다. 한 마디로 강준만은 복거일 식으로 이야기하면 성찰적 진보주의자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이에 비하면 유시민은 순진한 진보주의자? 물론 멍청하단 소리는 아니다. 호치민을 닮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표지 사진 때문일까? 진중권이라는 필자는 생소한데 내가 영원한 제국을 읽은 뒤에 가진 혐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把持陰莖? 화이트헤드? 하하하~

 강준만식의 잣대는 분명 구도자적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생을 부르짖는 종교의 실천성과 들어맞는 부분들이 있다. 

 인물과 사상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번뜩이며 지나갔는데 바람처럼 사라졌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距離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결국 시간의 흐름은 망각의 문고리들을 만드는 것이리라. 그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자는? 

 1998.5.12.

 시간의 흐름은 결국 방향성의 문제겠다. 직선적인 시간이 파시즘적 집요함을 만들어내듯이 산만한 시간 역시 집요한 퇴행들을 이끌어낸다. 인간의 욕망이 지니는 이중성이 일리를 지니고 다시 드넓은 속세에서 자기자
리를 추스릴 수 있기까지 시간의 무게는 주름진 굴곡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삶의 신비여!

 무신경함이 미덕처럼 번지고 있다. 분업화의 단점들이 몰고온 차이를 참지 못함이여, 봉건적인 구획의 경험이 부족함에서 오는 불성실함일까?
 
 1998.5.14.

 무엇을 만든다는 것, 창조를 한다는 것은 불안한 결벽 속에서 희열을 느낄 때까지 매진하는 속에서 이루어질 때 성숙과 만날 수 있다. 일상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일회적 가벼움이 투기적 심성을 키우듯이 급변이나 혁명은 시의성의 정점을 탈취하고는 하산하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모양새를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은 평상적인 일상의 감각을 부지불식간에 떨구어낸다. 몸적인 경험을 거역하기 힘든 것이 인간이다. 결국 이런 사후적 진단은 뒷북치는 모양새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협의의 장을 이끌어 가야한다. 협의의 장이 일그러질수록 급변이나 혁명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창조란 그럼으로 일상에서의 나름의 가치를 지니며 조화를 이루는 몸을 전제로 한다.
 
  1998. 6.1.

 무엇과의 밀착이라? 가만가만 아침이 다가오고 정갈한 기운들이 지저귀는 오솔길의 산책. 황당한 어둠의 무늬들이 사그라들면서 편력의 마지막에 당도한 소담한 진흙탑.



Flag Counter


다음 애드클릭스 링크했습니다.

사람과사람/공지사항
다음 애드클릭스 링크했습니다.
구글의 애드센스보다 인터페이스나 설치는 쉽고 깔끔하네요.
구글것은 저희 웹사이트에 설치하다 많은 번거로움에 부딪쳤는데..
처음해보는 사람은 숨바꼭질을 시키더군요..

예전에 링크프라이스나 아이라이크클릭등은 인터페이스가 이용자의 거부감과
지나친 상업성의 노출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하긴 저희 웹사이트에서 링크프라이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초기에 광고수익을 받은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쓰니조금 미안한감이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일일이 링크를 만들어서 하나하나 붙였고 검색엔진 키워드 광고도 초기인지라
나름대로 효율성이 있었습니다. 광고가 구매가 이어져야만 수익이 발생하는 한계도 있었지만
지금은 툴바나 기타 장치들 때문에 말이 많더군요.
커뮤니티사이트나 기타서비스 사이트에서는 아직 효용성이 있을듯합니다.
툴바같은 장치는 빼구요..

블로그라는 웹사이트와는 약간 다른 이용형태나, 마인드의 다름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운용해보고 장단점이나 기타 사항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Flag Counter


사진과 영상

초보의 영상활용/보관 및 활용
한장의 사진은 깊은 사유와 생각들을 이끌어냅니다.
찍을당시의 주변상황과 감정상태들이 하나둘 튀어나오면서
과거속으로 생각의 여행을 떠나게 합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과 같은 순간들...

영상은 시청하는 동안에는 사유의 시간을 길게주지 않습니다.
활동하는 과거속의 모습들에 넋이 나갈수도 있습니다. 과거를 다시 체험하게 합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한편을 보고나면 폭풍이 몰려오는듯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0-20년전에 찍어놓고 기기가 없어 시청을 못하다
저희 사무실에 확인을 하시면서 살짝 우시는 분들을 여러분 보았습니다.

사진은 정적인 재현이고 영상은 동적인 재현입니다.
감상할때의 마음상태도 비슷한 궤적을 그립니다.
영상은 부가적으로 목소리의 재현이 주는 또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실제 재현이 주는 감동은 상상속의 증폭을 따라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상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기록됩니다.
과거에 놓쳤던 부분들을 따라가면 또다른 마음의 무늬들이 생겨납니다.

기록된 과거들은 현재에 나타나 삶의 감성들을 자극합니다.
과거로 물리적으로 돌아갈순 없지만 재현된 과거들은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현재입니다.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무늬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Flag Counter


비디오테잎 이야기.

초보의 영상활용/보관 및 활용
아주 오래전에 봤던 글이라 기억에 의존해 대강 적었는데 그동안 출처를 찾지 못했었는데
웹서핑하다 찾았습니다.

출처: http://myhome.shinbiro.com/~sapacho/c2.htm#Sony Betamax vs. JVC VHS
이론적 배경이나 전문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VHS, 비디오테잎이라고 많이들 이야기 하지요. VIDEO HOME SYSTEM의 약자입니다.

마쓰시다에서 분사한 조그만 회사였던 JVC에서 개발한 방식으로 소니의 베타맥스 포맷을
물리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술적인 성능의 열세, 브랜드 이미지, 시장선점등에서 밀렸지만
고객의 편의성을 깊이 생각한 제작 및 설계, 마케팅방식,
기술의 개방정책등으로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방식을 개발한 사람은 회사에서의 냉대,국가에서는 이미 발표된 소니의 표준방식을 위한 포기권고,
자신들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앞서서 선보인 선점기업등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모두 극복을했습니다.
초기에는 많은 부분 밀렸지만 가장 큰 성공원인은 가정용 비디오카메라의 출시였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좀 난해하고 가격에 비해 불필요해보이는 기기였던
VTR이 제짝을 만난셈이지요.
이로인해 이기기의 매력이 일반고객들에게 인식된 것입니다.
자기가족이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찍어 TV로 본다는 것이
특히 미국시장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마케팅방식도 소비자앞에서 직접시연하면서 감성에 호소했다합니다.
기술적인 특징중에 차이를 말하라면 화질에 관한것입니다.
하지만 소니가 한가지 간과했던 것은 일반인을 상대로 하면 그렇게까지 까다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베타맥스와 VHS방식간의 화질차이는 시청자가 의식하지 않고
봤는데도 너무표난다는 정도가 아니라 전문가가 봤을때 느끼는 정도입니다.
또 차이점은 초기에 나왔을때 소니는 1시간짜리를 기준으로 출시했고
JVC는 일반영화가 수록될수있는 2시간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베타방식을 응용해서 발전시킨 소니의 베타 방식은 전세계 공중파 방송시장에서
특히 한국에서는 아주 독점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화질은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용도와 목적이 다르고
일단 운용되는 기기들의 가격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방식은 가정용을 염두에 두었던 베타맥스와는 다릅니다. 좀더 발전시킨 것입니다.

맥킨토시와 윈도우의 경우가 생각나네요.
현재는 블루레이와 HD-DVD가 차세대 표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 전쟁중입니다.

여담으로 몇달전쯤 여러가지 장비수리 문제로 소니 A/S 직원과 통화하다
고장나서 굴러다니는 베타맥스 VCR 수리 가능여부를 물었더니
베타맥스가 뭐냐고 되묻는데 속으로 실소를 금할수 없었습니다.
알면서 그러는건지 진짜 모르는건지...

VHS방식의 테잎은 지금은 점차 사용이 되지 않지만
가정집에서 영상물이 보관용도로 쓰이게 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저장매체는 시대의 전반적인 기술발전 속도에 따라서 활용도를 가집니다.
그리고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편리함 그리고 적당한 가격이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오랜기간 많은 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기준으로 뒤처진 매체가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매체가 처음에 담을수 있는 화질의 상태와 화질의 보존성 입니다.
비디오테잎은 복사시의 열화로 같은조건에서 작업시
DVD에 비하면 처음에 담을 수 있는 화질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보존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비디오테잎은 일종의 전자석입니다.
자석이라는 것은 자성이 떨어지면 잘 붙지 않듯이 기록된 자성이 떨어지면서 화질이 떨어집니다.
사용을 많이 하면 빨리 떨어지고 사용을 하지 않아도 서서히 떨어집니다.
그리고 보관상태,사용상태에 따라서 아예 재생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촬영용 카메라는 VHS테잎이 들어가는 엄청큰 몸통을 가진 장비와
가정용으로 쓰이던  VHS-C 포맷이 있습니다.
테잎크기는 8미리와 유사하지만 폭이 더 넓습니다.
비디오테잎과 같은 원단으로 테잎크기를 작게 만든 것입니다.

비디오테잎은 연세많으신 분이나(경험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노인분들을 무시해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디지털 매체를 시청할 기기가 없으신분,
외국으로 보내실때(방식에 따른 몇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공모전이나 예체능계 입학시 포트폴리오를 담은 매체를 비디오테잎으로 요구할때등입니다.



Flag Counter


영상생활을 위한 몇가지 기술적 특징들..

초보의 영상활용/보관 및 활용
영상을 즐기시려 캠코더를 사려는데 이게 좋더라 저게 좋더라
회사 광고보면 이게 좋을듯 저게 좋을듯 헷갈립니다.
고민고민 끝에 하나 사가지고 신기해서 이리찍고 저리찍고 하다보니 여러개의 테잎이나 저장매체
매번 캠코더로 보려니 답답하고 이리저리 알아내 컴퓨터로 옮겼더니
화면이 조그많거나 화질이 흐리멍텅 어떤건 또 왜이리 용량이 큰지 하드디스크 다잡아먹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캠코더 만지면서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업무적으로 상담하다 이런상황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접할수 있는 영상파일은 모두 일종의 압축파일입니다.
영상을 비압축으로 저장해서 사용하면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는 적합한 시청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비압축 영상은 1분당 1기가가 넘습니다. CD한장으로 담을 수 없는 용량입니다.
비압축 영상은 편집실이나 기타 영상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필요에 의해서 쓰는 포맷입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용량의 비압축영상을 범용성을 가지게끔 만든것들이
다양하게 접하는 영상포맷들입니다.

VCD용으로 쓰이는 mpg 파일은 1시간넘는 분량을 700메가 CD에 담습니다.
그럼 몇백배의 화질차이가 날까요? 그건 아닙니다.
컴퓨터나 아날로그TV로 시청하시는 용도로는 그냥 볼만합니다.

DVD용으로 쓰이는 mpg2 파일은 환경에 따라서 집에서 케이블로 보시는 아날로그 TV보다
좋은 화질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물론 원본 촬영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압축률이 뛰어납니다.
영상관련일을 하시거나 다양한 영상의 특성을 알고 자세히 보시는 분이 아니라면
촬영 원본이랑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의를 제기하실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인터넷에서 비압축영상 받은거랑 직접 촬영해서 만든 비압축영상이랑 차이가 많던데..

이 게시판에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화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요소는 원본화질입니다.
좋은원본에서 압축된것은 많이 압축해도 화질이 많이 보전됩니다.
반대로 많이 손실된 원본이나 기기의 한계로 인한것은 비압축으로 만들어봤자 화질은
거의 그상태로 좋아지지않고 용량만 무리하게 커집니다.
원본화질의 조건은 촬영기기,촬영 기술과 연출된 환경 및 배경의 상태,후반작업
이 세가지 요소의 조화로 결정된다고 보시면 무리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정리해서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진 것을 기준으로 화질을 이야기하면
촬영 원본 >  DVD 비디오 > CD용 비디오
순이며 VHS는 DVD 다음쯤에 오나 가변적으로 녹화당시의 상태와 보존상태 사용상태에
따라 점진적으로 나빠집니다.
기타 인터넷용 파일이나 디지털파일은 제작시에 가변적으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특성상 DVD와 CD용 비디오 전후에 들어갑니다 대표적 포맷으로 DIVX파일과 인터넷용 WMV파일이 있습니다.

DIVX파일은 용량대비 화질이 뛰어난 포맷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들이 DIVX포맷을 쓰는 이유는 DVD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4-9기가 사이의 DVD용량을 현재 네트웍환경에서 다운로드용으로 쓰기 힘들어서입니다.
그래서 좋은 화질의 DIVX파일을 보아서 DIVX파일은 고화질이라는 착각아닌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역시 원본의 상태가 제일 중요합니다.
일반 홈비디오나 간단한 업무용 영상을 DIVX로 파일로 만들때는 주의점이 있습니다.

역시 자주등장하는 원본화질, 비디오테잎이나 가정용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DIVX를
만드는 것은 꼭 그 포맷으로 맞추어야할 이유가 없는한 권장하지 않습니다.
우선 특별한 화질개선효과는 없고 mpg로 만들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아주 엄밀하게 말하면 DIVX도 mpg4를 해킹한것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장난스런 몇가지 코드를 집어넣은게 전부였다더군요.
 원래는 상용으로 만들어 한정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는데 불편해서 사장되었답니다.
 지금은 상용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때문에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합니다.
 XVID코덱 같은것이 이에 반발해서 나오는 코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mpg는 VCD용으로 흔히 쓰이는 mpg1을 말합니다.
가끔 질문중에 mpg뒤에 붙는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것이냐고 물어보는데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러저러하게 쓰자는 규약이 나온 순서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DIVX파일은 컴퓨터 환경에 어두운 분에게 드릴때는 주의하셔야 하는것이
코덱이 깔려있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코덱이란 것은 영상을 압축해주는 방식이며 무수히 종류가 많습니다.
물론 곰플레이어 같은 것으로 코덱없이 볼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번거로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업무용으로 배포하시는 것이라면 한번쯤 더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이럴때는 mpg파일로 드리는 것이 제일 속편합니다.
가정용 캠코더로 찍은것은 비트레이트가 비슷하면 화질차이도 거의 없습니다.
기껏 화질 좋다고 챙겨주었다가 순간적으로 분위기 쏴~~ 해질수 있습니다.
mpg파일은 컴퓨터에 이상이 있지 않는한 별다른 조치없이 시청할 수 있습니다.

WMV파일은 인터넷에서 스트리밍용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래서 화질이 나쁘다고 알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WMV파일은 범용성이나 담을수 있는 화질의 폭이 넓어 개인적인 용도나 업무상의 자료등으로
활용의 폭이 넓습니다. 보통 DVD나 VCD는 화면사이즈나 담을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상대적으로 한정적입니다.
요즘 나오는 HDV포맷등의 용량을 고려한 화질보전 목적으로 WMV파일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단점은 인코딩 시간이 무지하게 오래 걸립니다.
HD급은 DVD보다 화면사이즈가 큽니다.
WMV는 사용자가 사이즈나 데이터양을 조절해서 사용할때 응용폭이 넓습니다.
만들때 사용된 윈도미디어엔코더 버전에 맞추어서 플레이어나 코덱을 설치해야 볼수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외 MOV파일등이 있는데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널리 쓰이지 못합니다.
맥킨토시로 영상편집하시는분들이나 외국에서 자료로 보내온 파일외에는 의뢰하셨던분이
없던것으로 기억됩니다,

컴퓨터에서 동영상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로는 대체적으로 이 순서대로 일듯합니다..

1.기본으로 운영체제에 깔려있는 영상코덱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2.컴퓨터가 상태가 안좋을 때
  (바이러스나 소프트웨어상태 불량이나 버그,CD롬이나 DVD롬 상태 불량)
3.컴퓨터 사양이 낮아 버벅거릴때
4.동영상이 담겨진 매체(CD,DVD)상태가 안좋거나 훼손되었을때
5.DVD비디오는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설치가 안되어 있으면 DVD롬이 있어도
  코덱이 없거나 재생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6.외국에서 가져온 DVD는 지역코드가 달라 재생이 안될 수 있습니다.
7.동영상 파일 자체가 이상이 있거나 맥킨토시 형식의 볼륨으로 구워진 미디어.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캠코더의 종류는 6미리,8미리에 요새는 DVD도 많이 쓰시더군요.
그외에 거의 사장된 VHS,SVHS,VHS-C와 요즘 나오는 HDV와 하드내장형,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동영상 JVC에서 나온 에브리오 기종의 마이크로드라이브와 4미리(MICROMV)등이 있습니다.
테잎을 쓰지않는 매체는 mpg2기반이나 mpg4기반입니다.
HDV와 4미리도 mpg2 기반입니다.
mpg2는 일반적으로 DVD에 쓰이는 포맷이며 HDV는 화면 사이즈가 다릅니다.
참고적으로 HDV기기로 촬영한것이 HD방송에서 볼수있는 그정도까지의 고화질은
구현되지 않습니다. 화면 사이즈만 HD급입니다.
가정용 캠코더 중에서는 화질만 따지면 좋은편입니다.
업무용은 용도에따라 업무용 6미리 기종이 더좋은 선택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외에 방송용이나 기타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방식들이 있습니다.

새로나오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캠코더는 사용자편의성에 맞춰 있으나 주의점은
현시점에서 영상편집을 염두에 두신다면 권장하기 애매합니다.
mpg2파일은 화질은 좋은편이나 이 포맷에 맞춰져 편한게 쓸수있는
종합편집소프트웨어는 별로 없습니다.
향후 몇년내에 많이 활성화 될듯합니다(컴퓨터의 처리능력과의 관계가 깊습니다)

6미리도 가정용과 업무용이 존재합니다.
사용시에 주의점은 테잎 아낀다고 LP모드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권장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화질의 차이는 없지만 시간대비 가용하는 테잎의 구간이 짧아 안정성이 떨어지고
다른기기에서 재생시 원활치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허락되면 3CCD방식을 쓰는것도 좋으나 HDV가 나오는 상황이라
활용할 시점이랑 견주어 기호에 맞추어 선택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8미리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날로그8미리,HI8미리,디지털8미리
단종된 상태이며 디지털8미리는 6미리에 필적하는 화질을 가졌습니다.
6미리가 보편화되기 직전에 나온 모델이라 시장에서 금방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소장하고 계신다면 적극 활용하시길 권장합니다.
아날로그 8미리도 화창한 바닷가라던가 적절한 조건에서 촬영하시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분이라면 화질은 볼만합니다.
다만 차이는 분명 존재하며 소장중이거나 어디서 누가 줬다면 활용하라는 의미로 드린말씀입니다.

그외 DVD캠코더나 기타 기종은 메뉴얼을 보고 숙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기능때문에 테잎을 넣어 아날로그형태로 사용하는 기종과 다른점이 있습니다.
매체의 데이터 포맷이나 저장방법 DVD의 화이널라이징등, 모르고 메뉴를 잘못눌러
촬영된게 날라간다 등등의 낭패볼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업무용으로 쓰이는 것들이 아니고,
종류도 많고 일일이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것들이 아니고,
고객분들 것을 잠깐식 만져본 것이라 명확하게 설명드리기 어렵네요.
역시 동호회에서 사용 정보를 찾고 묻는것이 더 좋을듯싶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1.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는 캠코더는 현시점에서 편집용으로 쓰기 불편하다.
    사용편리성을 고려하면 가정용으로 편집없이 쓰기에는 좋습니다.
2. 6미리 LP모드 촬영은 자제한다.
3. 기기가 아무리 좋아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
4. 일회성이 아니라면 다른매체로 변환 했더라도 촬영원본 테잎은 별도 보관한다.
5. 촬영을 많이 해본다, 촬영은 개인차가 있지만 결국은 해본만큼 실력이 향상됩니다.
6. 내장형 하드나,마이크로드라이브등을 쓰는 기기는 현실적으로 미디어를 변환해서
   보관해야합니다.
    현시점에서 경제성이나 편리성을 고려해 DVD로 여러장 만들거나 그외에 웹스토리지나  
    하드디스크에 보관한다.
    다만 이런 매체들도 물리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을 꼭 염두에 두십시오.

    요즘 생각할 때 아쉬운점은 테잎을 쓰지않는 캠코더는 쓰기는 편하지만
    최소 몇십년은 보관해야 가치가 있는것인데..
    앞에 촬영된 데이터를 지우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해야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개인의 성장비디오등 먼훗날까지 보관해야 되는 영상물은 여러매체에 분산해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의 하드디스크에 전부 보관했다가 복구불가능 상태가 되면 아주 난감합니다.
    몇십년 혹은 그이상 보관할 목적이며 적절한 보관법을 생각하셔야합니다.
    디지털은 완전무결한 매체가 아닙니다. 그 이전시대보다 어떤측면이 편리해진 것입니다.
7. 고가의 캠코더는 화질이 좋거나 특화된 기능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전에 많이 알아보시고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좋다는 말만듣고 고가로 구입하고도 적절한 사용이 되지않으면 이또한 낭비가 됩니다.
    용도가 가족이나 간단하게 사용하는 촬영이라면 휴대성도 꼭 생각해보십시오.
    기기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오기에 구입시기와 활용시기를 고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화된 기기는 영화와 비슷한 질감의 촬영이 가능하다거나,
    제조사마다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러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능이 들어간 기기는 없으며 필요에 의한것을 생각하고 구비하시면 됩니다.
    업무용으로 쓰이는 기기들은 제조사마다 색감이나 밝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촬영기기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변환을 해주다보면
    어떤 기기로 촬영된 테잎인지 구분이 가능할때도 있습니다.
    색감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이라 사람에따라 반응이 극과극일 경우도 있습니다.
    편집과정에서 보정을 하는것이 가능하지만 많은 학습과 경험 그리고 시간적 인내를
    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용으로 쓰던가 연출된 영상을 만든다거나하면 모를까
    가정용이나 일반용으로 쓸때는 동호회같은 곳에서 많이 알아보시고 구입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Flag Counter